묵주기도의 영광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시작하여 성령 강림과 성모님의 천상 영광에 이르기까지 구원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장면들을 묵상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광의 신비 하나하나에 대하여 관련 성경 구절과 가톨릭 교회의 교의적 가르침을 살피고,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와 기도문을 제공합니다. 또한 각 신비와 연관된 성인들의 말씀과 신앙의 모범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학문적 깊이와 영성적 성찰을 균형 있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묵상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멈추어 기도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니, 천천히 따라가며 영광의 신비가 가져다주는 은총을 체험해 보십시오.
제1단 예수님의 부활

관련 성경 구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마르 16,6) 예수님의 부활은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핵심 사건으로,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에 대한 증언들이 전해집니다 (마태 28, 마르 16, 루카 24, 요한 20-21장). 특히 루카 복음에서는 천사가 “왜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느냐?”(루카 24,5-6)라고 물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교의적 배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정점이자 중심 진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 진리로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것을 중심 진리로 믿고 생활하였다”라고 가르칩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믿음도 헛됩니다”라고 말합니다 (1코린 15,14 참조).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죽음을 이기고 새 생명으로 일어나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원과 당신 말씀의 진리를 결정적으로 확증하셨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초자연적 사건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생명의 현실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류 구원이 완성되었고 죽음의 사슬이 끊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이로써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희망을 얻었고, 세례를 통해 새 생명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6,4 참조).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이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봅시다. 이른 새벽 어둠을 깨고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의 심정으로, 혹은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갔던 제자들의 마음으로 그 빈 무덤 앞에 서 보십시오. 슬픔과 절망이 기쁨과 환희로 바뀌는 순간을 떠올리며, 예수님의 부활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시며 (요한 20,19)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듯이,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상처에도 찾아오십니다. 내가 겪는 고난과 ‘죽음’의 경험들 – 좌절, 상실, 절망 – 그 한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주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 신비를 묵상할 때 느껴지는 빛과 생명의 에너지를 마음껏 받아들이고, “주님, 제 안에 부활의 빛을 비추소서” 하고 청해보세요. 부활의 기쁨은 세상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평화와 확신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잠시 눈을 감고, 주님께서 무덤에서 나오실 때 퍼졌을 새벽의 빛과 천사의 환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빛이 내 영혼에도 스며든다고 느껴보십시오.
묵상을 돕는 기도
주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여, 어둠 속에 있는 저희에게 부활의 빛을 주소서. 의심 많고 두려워하는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시고, 슬픔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심어주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나이다.” 주님 부활의 능력이 오늘 제 삶에도 작용하여, 저의 말과 행동이 알렐루야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과 성인들은 부활 신앙을 삶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며 “우리들은 부활의 백성이요 알렐루야는 우리의 노래입니다” 라고 고백하였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이를 자주 인용하며 신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힘임을 많은 성인들이 증언합니다. 이를테면, 의심하던 사도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하며 굳은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영적으로 체험할 때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성인들은 고난 중에도 “알렐루야”를 노래하며 부활 신앙에 뿌리를 두었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마음에 새기며, 부활 신앙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도록 합시다.
제2단 예수님의 승천

관련 성경 구절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마르 16,19)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신 뒤 (사도 1,3),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사도 1,9-11; 루카 24,50-53 참조).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짧게 언급하지만, 사도행전은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자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했다”고 전하며(사도 1,9), 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사도 1,11).
교의적 배경
예수님의 승천은 부활에 이어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승천하신 주님이 하늘에서 성부 오른편에 앉으심으로써 인성을 지닌 우리에게도 천국의 길이 열렸다고 가르칩니다. 레오 대교황 성인은 승천 축일 강론에서 “부활 대축일에 우리가 기뻐한 것은 주님의 부활 덕분이며, 오늘 승천 대축일에 우리의 기쁨은 주님의 승천에 있다. 이 날에 우리 비천한 인간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높이 올려져 성부의 옥좌에까지 올라갔다”고 설교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면서 참 인간으로서 승천하심으로, 우리 인간의 몸도 하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61항은 “아버지에게서 내려오신 분(예수)만이 다시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어 인류를 대신하여 하늘 집에 들어가셨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실 준비가 이루어졌고 (요한 16,7), 예수님은 이제 하늘에서 만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자 대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늘 중재하고 계십니다(히브 9,24). 니케아 신경에서도 믿듯이,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을 교회는 고백합니다. 승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서, 주님께서 세상에 직접 가시지 않지만 교회를 통해 계속 현존하시고 활동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마음을 떠올려 봅시다. 스승이신 주님이 눈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그들은 경외감과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루카 24,52). 이 신비를 묵상하며, 우리도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승천 장면을 바라봅시다. 주님께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 내 곁에 있게 하겠다”(요한 14,3)고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늘 고향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가 영원한 본향으로 부름받았음을 상기시킵니다. 동시에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 즉 “성령이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사명을 되새겨봅니다. 주님 없이도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의 두렵고 막막한 심정을 느껴 보되, 곧 오실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당신께서 올라가신 그 하늘을 향해 저희 마음도 들어 올리소서. 지상의 일에 매이지 않고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은 승천하셨지만 결코 우리를 버려두신 것이 아니며, 새로운 방식으로 언제나 함께 계심을 믿으며 묵상합시다(마태 28,20). 하늘 영광 속에 계신 주님을 관상하며, 우리의 예배와 찬양이 그분의 왕좌에 닿는 것을 이미지로 그려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마음도 주님과 함께 높이 들려 하늘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을 돕는 기도
예수님, 영광 속에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저희를 위하여 아버지 오른편에 자리하시어 중재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계신 곳에 저희도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 마음을 하늘에 두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영광보다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게 하소서. 주님, 세상에 남은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주님의 증인이 될 힘과 용기를 주소서. 언젠가 다시 오실 주님을 희망하며 오늘도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살아내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아우구스티노는 예수님의 승천과 우리의 희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비록 그분께서 홀로 승천하셨지만, 우리는 은총으로 그분 안에 있어 함께 올라간다.” 이 말씀처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심으로 그의 지체인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할 길이 열렸습니다. 많은 성인들은 늘 “하늘의 시민”임을 자각하며 지상에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테면,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이 세상은 우리의 참된 집이 아니기에, 우리는 하늘을 향해 난 배와 같다”고 말하며 하늘을 동경했습니다. 성 가타리나 시에나도 “예수님의 상처 난 발을 붙들고 하늘로 오르자”고 권고하며, 주님 승천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많은 순교 성인들은 하늘 영광에 대한 확신으로 고난과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하늘의 임금을 섬긴다”며 지상의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았지요. 우리의 신앙 선조인 한국의 순교자들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며 승천하신 주님께 운명을 맡겼습니다. 이러한 성인들의 모범은 승천의 신비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도 땅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미 이 지상에서부터 영혼이 승천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3단 성령 강림
관련 성경 구절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예수님의 승천 후 사도들과 성모 마리아가 다락방에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갈라지면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말하게 해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2,2-4 참조) 이처럼 성령 강림으로 사도들은 능력을 받아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 날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2,41),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교의적 배경
성령 강림 대축일은 흔히 교회의 탄생일로 불립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아들이 수행한 일이 완성되자, 성령께서 오순절에 파견되시어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신다”고 가르치며, 바로 이 성령의 힘으로 복음 선포의 시대가 열렸음을 밝힙니다. 성령은 강림하신 이후 언제나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를 진리 안에 유지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교부들은 “교회 안에 계신 성령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살아 있게 하듯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고 비유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성령은 교회의 영혼”). 또한 성령은 신자 각자의 마음에 내주하시어 (1코린 3,16) 우리의 신앙을 북돋우고 성화를 이끄십니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지혜, 통찰, 의견, 굳셈, 지식, 경건, 주님을 경외함)는 우리의 영혼을 성화시키는 선물이요, 성령의 열두 가지 열매(갈라 5,22-23)는 성령과 협력하여 맺게 되는 덕행의 열매입니다. 성령 없이는 누구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고 (1코린 12,3), 성령 없이는 교회의 성사와 복음 선포가 효력을 낼 수 없습니다. 강생부터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적 순간에 성령께서 함께하셨듯,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와 우리 각자의 삶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인호”를 받아 특별한 성령의 은총을 부여받았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던 마리아와 사도들의 무리에 우리 자신을 합류시켜 봅시다. “한 곳에 함께 모여 있던” (사도 2,1) 그들 가운데에 앉아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을 기다리는 심정을 느껴보십시오. 성모님은 약속된 성령을 믿으며 묵묵히 제자들을 이끌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 믿음과 인내를 본받아, 우리도 성령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의 혀”와 같은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을 묵상하십시오. 오순절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내 영혼에도 닿아 활활 타오른다고 믿으며, 내 안의 두려움과 나약함, 죄의 어둠을 태워 없애 달라고 청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냉담했던 가슴을 태워 사랑으로 뜨겁게 하시고 (루카 24,32에 나오는 엠마오 제자들의 마음처럼), 굳었던 의지를 부드럽게 변화시키십니다. 또한 다양한 언어로 복음을 말하게 하신 것처럼, 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언할 “언어”를 성령께서 주시길 청합니다. 그것은 실제 설교나 선교일 수도 있고, 이웃에게 전하는 친절과 용서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시며 생명이시기에, 숨을 들이마시듯 성령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호흡합시다. 조용히 “오소서, 성령님”을 반복하며 기도하거나, 성령 찬가인 “와서 우리에게 임하소서”의 가사를 마음속으로 되새겨도 좋습니다. 성령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 내 안에 새로운 용기와 기쁨, 평화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껴보십시오.
묵상을 돕는 기도
성령님, 오소서! 저희 마음을 당신 사랑의 불로 덥혀 주소서. 차가운 마음을 녹여 주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 두려워 숨죽여 지내는 저희에게 용기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고, 무기력한 영혼에 새로운 활력을 주소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 저희에게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고 옳은 길을 택할 통찰을 주소서. 거룩함의 영이신 성령님, 저희를 정화하시고 성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성령의 열매가 제 삶에 맺혀 주님의 향기를 전하게 하시며, 언제나 저를 도우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령에 관한 성인들의 고백은 매우 풍부합니다. 아르스의 성인인 성 요한 비안네는 “성령께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이끌듯 우리를 이끌어주신다. 그러니 매일 아침 ‘오소서, 성령님! 제가 무엇이며 주님께서 누구신지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실제로 성령을 삶의 스승으로 모셨던 성인들은 매 순간 성령께 도움을 청하며 살았습니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성령을 “잊혀진 분”이라고 부르며, 신자들이 성령과 친밀해질 것을 강조했습니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커다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요. 또한 성 바실리오와 성 대 그레고리오같은 교부들은 성령을 “영혼의 빛”에 비유하며, 성령 없이는 한 순간도 올바로 살아갈 수 없음을 가르쳤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간 현대의 성인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복자 오스카 알누포(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불의에 맞서 싸우다 순교하였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옥중에서 성령께 의탁하며 동료들을 격려했습니다. 교황 성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며 “우리 시대에 새로운 오순절을 내려주소서”라고 간구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교회가 드리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 자신을 내맡긴 성인들의 삶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성령에 충만히 순응할 때, 나약함이 용기로, 우울이 기쁨으로 변하며, 매일의 일상이 은총의 드라마로 탈바꿈될 것입니다.
제4단 성모님의 몽소승천

관련 성경 구절
성모 마리아의 몽소승천(Assumptio)은 성경에 직접 서술되지는 않지만, 교회는 성경의 여러 암시를 통해 이 진리를 묵상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요한 묵시록 12장에 나타난 하늘의 여인입니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묵시 12,1) 이 구절의 여인은 교회와 성모님을 모두 상징한다고 해석되며, 특히 머리에 별의 관을 쓴 모습은 성모님의 천상 영광, 곧 승천과 모후 대관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다른 암시는 “하느님의 궤”(언약궤)로서의 마리아 상징입니다. 구약의 언약궤가 다윗 왕 때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겨질 때 다윗이 기뻐 뛰논 장면(2사무 6,14)이나, 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미카엘이 “주님, 일어나셔서 당신 처소로 떠나소서”라고 노래한 시편 구절(시편 132,8)은 신약에서 새로운 언약의 궤이신 마리아의 승천을 예표한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루카 1,28)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교의와 연결하여, 죄 없이 깨끗하신 그분의 몸이 썩지 않고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믿음이 초기부터 존재했습니다.
교의적 배경
성모님의 몽소승천은 가톨릭 교회의 4대 마리아 교리 중 하나로,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ex cathedra(교황 무류성으로) 선언된 믿을 교리입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사도적 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에서 “원죄의 어떠한 흔적도 없이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후 몸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았다”고 엄숙히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은 마리아 승천에 대한 교회의 오랜 신앙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이미 초세기 교부들 가운데 성 요한 다마스켄스(다마스쿠스의 요한) 등은 마리아 승천을 강론하면서 “출산 후에도 티없이 순결하셨던 마리아의 몸이 죽음 후에도 썩지 않는 것은 마땅하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아드님의 것을 나눠 가지심은 마땅하다”고 말하며 마리아 승천의 합당함을 증언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전승에 따라 마리아의 최후를 ‘기원(己遠)’, 곧 잠드심으로 표현하고, 그분이 죽음을 거쳐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셨음을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966항도 “티없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는 지상 생애를 마치신 후 몸과 영혼이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들어 올림을 받으셨고, 주님께 모든 피조물의 여왕으로 높여지셨다”라고 명시하여, 승천과 함께 성모님의 모후(母后) 되심을 가르칩니다. 이는 곧 다음 다섯째 신비인 모후 대관과 연결되는 진리입니다. 요컨대, 성모 승천 교의는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에 가장 완전하게 참여하신 분임을 선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죄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인간이 누리게 된 구원의 열매를 보여줍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미 영혼과 육신이 모두 영화롭게 되셨기에, 종말에 모든 성도가 누리게 될 부활의 영광을 미리 앞서 보여주는 표징이십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에는, 한편으로 지상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마리아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고, 이어서 천상으로 올림을 받는 장면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께서 잠드셨을 때 사도들이 주변에 모였고,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마리아의 거룩한 몸이 천사들에 의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성화(聖畫)나 조각상 등으로도 많이 접해왔지요. 성모님이 눈을 감고 고요히 누워 계신 모습을 떠올리며, 평생을 “예”로 응답하며 봉헌한 삶의 마무리를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갑자기 환한 빛 속에 천사들이 나타나 성모님의 지극히 순결한 몸을 들어 올려 하늘로 향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그 순간 지상에 남은 제자들은 경외와 슬픔, 기쁨이 뒤섞인 심경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하늘로 보내드리는 마음으로, 감사와 그리움의 기도를 드려봅시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하여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다 바치시고, 이제 하늘 영광을 입으소서.” 성모님의 승천은 인간에게 약속된 영광에 대한 희망을 심어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보내드릴 때의 슬픔과 이별의 아픔을 성모님의 승천에 비추어 보세요. 주님을 믿고 의탁하는 이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영원한 생명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성모님은 이미 그 약속을 이루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전구해 주십니다. 이 신비를 묵상하며, 나 자신의 죽음도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 품으로 돌아가는 귀향임을 받아들이고,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을 키워 봅시다. 또한 지상 생애를 통째로 바쳐 하느님 뜻에 봉헌한 성모님의 삶을 본받아, 나의 남은 여정도 하느님께 향하는 순례로 여기며 살아가기로 다짐해봅시다.
묵상을 돕는 기도
존귀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님, 지극히 거룩한 승천의 은총을 입으심을 찬미나이다. 티없으신 동정이신 당신을 하늘에 불러 올리신 주님의 크신 능력을 경배하나이다. 어머니, 이 땅의 순례길을 걷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하늘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소서. 이제 하늘의 모후가 되신 당신께 의탁하오니,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저희와 함께하시고, 죽음의 문턱에서 저희를 당신의 품에 안아 주소서. 성모님처럼 저희도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라고 응답하며 살다가,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하나이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모 승천을 특별히 기뻐하며 노래한 성인들이 많습니다. 4세기의 교부 성 암브로시오는 “성모님께서 이 땅의 삶을 마치셨을 때, 그분의 육신은 하늘의 거룩한 처소에 안치되었다”고 말했고, 성 요한 다마스켄스는 앞서 인용한 것처럼 마리아 승천의 합당함을 역설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의 선포 이전에 전 세계 주교들과 신자들의 간청을 수렴했는데,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미 마리아 승천에 깊은 신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공경이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함께 하늘 영광을 누리고 싶다”는 바람으로 표현된 것이지요. 우리 한국 교회도 성모 신심이 남다른데, 많은 신자들이 성모상을 안치하고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에 묵주기도와 성모찬송을 바칩니다. 이러한 신앙의 표현들은 성모님에 대한 공경일 뿐 아니라, 우리의 희망—장차 누릴 부활 영광—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녀 테레사 (아빌라의 데레사)는 한 환시 중에 성모님의 승천 장면을 보았다고 전하는데, 그녀는 이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모님이시여, 당신의 영광을 제게도 나눠주소서. 제가 지상에서 지닌 작은 십자가들을 당신의 모성적 사랑으로 감싸 주신다면, 저도 마침내 당신과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성인의 간구처럼, 우리도 매일의 십자가를 성모님 손에 맡겨 드리고, 마지막에는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그 영원한 행복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동정녀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하늘의 영광 속에 들어 올림을 받으셨나이다”라는 전례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성모 승천의 신비가 주는 희망을 붙들고 힘차게 신앙 여정을 걸어갑시다.
제5단 성모님의 모후 대관

관련 성경 구절
네 번째 신비와 밀접히 이어지는 모후 대관(母后戴冠), 곧 성모 마리아의 여왕 대관은, 묵시록 12장의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인” 묘사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또한 시편 45(44)편 10절에서 “오른편에 황금으로 단장한 여왕이 서 있다”는 구절을 전통적으로 성모님께 적용하여 노래해 왔습니다. 구약 시대 다윗 왕조에서는 왕의 어머니가 게브이라(여왕)로서 왕비 이상의 존귀한 지위를 누렸는데(1열왕 2,19 참조), 예수님을 다윗 왕조의 메시아 왕으로 볼 때 그 어머니 마리아는 당연히 하늘의 여왕이시라는 해석도 전해 내려옵니다. 루카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께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 부르고 장차 나실 아드님이 왕권을 받을 것이라 예고할 때(루카 1,28-33), 이미 성모님의 모후직(母后職)이 암시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 자체에 “마리아가 왕관을 받으셨다”는 직접 언급은 없지만, 앞선 승천 교의와 함께 성모님의 모후 신분은 묵시록과 전례 전통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교의적 배경
성모 마리아의 모후(Queen of Heaven) 신심은 교회 전례와 신앙 전통에 오래 자리해 왔습니다. 교회는 성모님을 향해 “천상의 모후시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로사리오의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를 마칠 때마다 Salve Regina(성모 찬송 “천상의 모후여”)을 불러 왔습니다. 이러한 신심은 마리아께서 온 천상의 성인들과 천사들의 여왕으로 높임받으셨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4년 회칙 『천상의 모후(Ad Caeli Reginam)』을 반포하여 성모 마리아 모후 주님을 공식 선포하고 5월 31일을 모후 축일로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전례력 개편으로 8월 22일로 이동). 이 회칙에서 교황은 “마리아께서 영광 중에 왕관을 쓰시어 만왕의 왕의 어머니로서 왕권에 참여하신다”고 가르치며, 이는 성모님의 특별한 역할—곧 하늘에서 신앙인의 어머니요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밀접히 관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모후 마리아 교리는 앞선 승천 교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966항에서도 성모 승천과 함께 모후로 높여지심을 하나로 언급하며, 성모님께서 “만유의 여왕”으로 주님께 높임받으셨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리아를 단순한 성인 한 분으로 공경하는 차원을 넘어, 하늘과 땅의 여왕으로서 특별한 공경(하이퍼둘리아)을 드립니다. 다만 이 공경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는 것이지, 마리아 스스로가 그리스도와 별개의 권능을 가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아들의 왕권을 받아들여 모든 믿는 이의 어머니로 섬기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왕관을 쓰셨지만 “여왕이기 이전에 우리의 어머니”이시며, 우리를 자녀로 돌보시며 천상에서 전구해 주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교회가 마리아를 다양한 호칭(로레토 성모 호칭 기도 등)으로 부를 때 잘 드러납니다. “천상의 모후, 천사들의 모후, 순교자의 모후, 평화의 모후” 등 수많은 칭호들은 모후이신 마리아의 사랑과 돌봄이 교회 전체와 각 신자에게 미친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성모님의 모후 대관은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께서 직접 성모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시는 모습이나, 천사들이 둘러싸여 Ave Maria!를 노래하는 모습 등 다양한 이미지가 전해집니다. 이 신비를 묵상할 때, 먼저 하늘에서 환호하는 천군천사들의 찬미 소리를 상상해 봅시다. “어머니께 만세! 우리 왕의 어머니이시여, 만세!” 하고 천사들이 기쁘게 환호할 것입니다. 한평생을 “주님의 종”으로 겸손히 사셨던 마리아께서 하느님에 의해 높임을 받으시는 장면은 정의와 겸손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성모님 머리에 찬란한 별들의 왕관이 씌워지고, 그분이 왕좌에 앉으시는 모습을 마음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이, 마음속으로 성모님께 찬사를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보세요. “모후이시여, 당신은 참으로 저희의 영광이요 기쁨이십니다!” 하고 환호합시다. 또한 모후이신 성모님을 향해 나의 어려움과 소망을 아뢰어 봅시다. 지상의 군주에게도 어머니가 간청하면 잘 들어주듯이,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께 우리를 위해 청원해주시는 분이 성모님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능하신 중재자”로 신뢰하며, 모든 지향을 당신께 의탁해 왔습니다. 지금 내 마음에 품은 기도 지향—가족의 회개, 병중에 있는 친구, 개인의 성화 등—을 성모님께 말씀드리고, 모후이신 성모님이 친히 예수님께 전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모님의 왕권은 곧 사랑의 왕권입니다. 그분은 통치자가 아닌 어머니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니 이 신비 앞에서 거창한 두려움이 아닌 친근한 신뢰를 느끼십시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이자 왕비인 분의 옷자락을 붙잡고 강청하듯, 우리의 기도와 삶을 어머니께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장차 하늘에서 성모님과 함께 왕관을 받을 날을 희망합시다. 성 바오로는 “썩지 않을 승리의 화관”이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고 말했지요(1코린 9,25 참조). 믿음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써 준비되는 의로움의 월계관(2디모 4,7-8)을 떠올리며, 모후이신 성모님의 도움이 있으면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음을 믿으며 묵상합시다.
묵상을 돕는 기도
영광의 왕이신 주님의 어머니, 천상의 모후 마리아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나이다! 하늘의 여왕이신 당신 앞에 저희는 작은 백성으로 모여 경배드리며, 저희의 모든 것을 봉헌하나이다. 모후이시여, 저희의 어머니가 되어주시어, 이 거친 세상에서 저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슬픔 중에 위로자가 되어주시고, 위험 중에 저희를 덮어 주시는 보호막이 되어주소서. 당신의 모후왕관이 의미하듯이, 주님께 전구하는 막강한 은총을 저희를 위하여 행사해주소서. 사랑의 어머니, 간절히 바라오니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저희를 다스리시고, 마침내 천국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우리 손을 잡아 이끌어 주소서. 천상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지금도 그리고 저희 죽을 때에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마리아는 여왕이시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어머니다.” 이것은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어린 시절부터 모후이신 성모님을 친근한 어머니로 여겼고, 자신이 죄로 넘어질 때마다 어머니께 달려가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녀는 “세상 임금의 어머니도 그 아들을 통해 청하면 모든 것을 얻어내듯, 하늘 임금의 어머니께 청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성심을 여는 열쇠를 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 속의 많은 성인들도 모후 마리아께 깊이 의탁했습니다. 성 알폰소 리구오리(St. Alphonsus Liguori)는 「영광의 성모」라는 책에서 성모 마리아를 향한 다양한 호칭들을 해설하며, 그중 “모후”라는 칭호에 특히 애정을 보였습니다. 그는 “모후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하늘에서 쓸 면류관을 준비하도록 왕비처럼 명령하시기보다,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손수 도와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성모님의 왕권은 사랑과 자비의 다른 이름입니다. 중세의 성인인 성 베르나르도는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성모님을 기억하라”고 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이에게 결코 버림이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신자들이 “성모님!”을 부르짖을 때 위로와 도움을 체험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선조들도 박해 속에서 “천주 성모 마리아!”를 외치며 최후를 맞이했고, 성모님의 현존을 느끼며 순교의 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묵주기도를 통해 언제나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를 떠올려 봅니다,
“묵주기도는 본질적으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관상이다.” 영광의 신비를 바칠 때,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는 관상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 모후께서 우리의 묵상을 당신의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친히 당신 손으로 봉헌해 주실 것입니다.
영광의 신비 묵상을 위한 실천 가이드와 신앙 성장
영광의 신비 묵상은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하고 궁극적 희망을 되새겨주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실천적 제안을 소개합니다:
- 말씀과 함께하기: 각 신비와 연결된 성경 본문을 묵상 전에 먼저 읽어보세요. 예를 들어 부활 신비 전에는 요한 20장을, 성령 강림 신비 전에는 사도행전 2장을 통독해 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주기도를 바치면, 말씀과 기도가 하나로 어우러져 묵상이 깊어집니다.
- 묵상 일기 쓰기: 묵상을 마친 후 느낀 바를 영성 일기에 적어보십시오. 각 신비가 준 깨달음이나 마음의 움직임, 떠오른 결심 등을 간단히 메모하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볼 때 자신의 영적 성장이 기록으로 확인될 것입니다.
- 묵상의 시간과 장소: 가능하다면 조용한 성당이나 경당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묵상하세요. 또는 통상적인 묵주기도 시간(예: 새벽이나 저녁)에 10분 정도씩 더 시간을 내어 한 신비씩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멈추어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 공동체와 나누기: 혼자 하는 묵상도 좋지만, 가족이나 소공동체와 함께 영광의 신비를 묵상해 보는 것도 권장됩니다.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각 신비 후에 돌아가며 느낀 점을 나누면, 서로의 신앙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체험을 나눌 때 묵상의 열매가 배가됩니다.
- 전례와 연계하기: 영광의 신비는 부활시기와 성령강림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등에 특별히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입니다. 전례력과 연결하여 그 시기마다 영광의 신비 묵상을 집중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컨대, 부활 팔일 축제 내내 첫째 신비 묵상, 주님 승천 대축일 즈음 둘째 신비 묵상 등으로 전례의 흐름과 함께 영적 여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 성화 활용: 각 신비와 관련된 거룩한 이미지를 바라보며 묵상하는 것도 도움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화, 성모 승천 그림 등을 준비해 놓고 잠시 응시하면 상상력과 감정이 더욱 자극되어 묵상이 생생해집니다. 이미지를 바라볼 때도 그 대상을 통하여 하느님께 마음을 향하도록 합시다.
- 신심 도서 참고: 성인들이 묵주기도나 각 신비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도 유익합니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의 「묵주기도의 비밀」,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등의 자료를 통해 교회의 지혜와 함께 묵상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영광의 신비를 통한 신앙적 성장
이 다섯 가지 신비를 꾸준히 묵상하면, 우리의 신앙은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첫째 신비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부활의 기쁨으로 우리를 채워줍니다. 둘째 신비는 희망을 북돋워 주어 천국을 향한 갈망과 순례자로서의 자세를 갖추게 합니다. 셋째 신비는 사랑의 불을 지펴 성령의 열매들(사랑, 기쁨, 평화 등)을 삶에서 맺도록 이끌고, 우리를 활기찬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시킵니다. 넷째 신비는 순결과 은총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어,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격려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확인시켜 주지요. 다섯째 신비는 겸손과 공경의 덕을 심화시켜 줍니다. 성모님께 대한 온전한 공경을 통해 우리는 교만을 이기고 순종을 배우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충실한 이에게 마련하신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처럼 영광의 신비는 신학적 덕목들(믿음, 희망, 사랑)과 성모님을 통한 모든 덕행을 조화롭게 함양시켜 줍니다. 무엇보다도, 영광의 신비 묵상은 우리 눈을 현세 너머의 영원으로 돌려줍니다. 일상의 어려움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가운데에도, 최후에는 부활과 승천, 성령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고난도 “영광에 이르는 진통”임을 깨닫고 인내하게 되지요 (로마 8,18 참조).
마지막으로,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더욱 친밀히 나아갈 때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 이끄시는 가장 안전한 길이십니다. 영광의 신비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승리를 노래하는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비들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의 영혼도 차츰 영광의 삶으로 변모되어 갈 것입니다.
부디 이 안내가 묵상에 익숙한 신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영광의 신비를 통해 충만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