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 제자들의 면전에서 하늘에 올라가신 사건을 기념하는 가톨릭교회의 큰 축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구원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교회가 성령 강림을 준비하는 중요한 전례 시기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이래로 전해 내려온 이 축일은 신앙의 핵심 진리를 포함하며, 성경과 교리에 뿌리를 두고 풍부한 전례 전통과 영성을 형성해 왔습니다.
아래에서는 가톨릭 교리, 성경적 배경, 전례적 의미, 역사적 발전 과정, 교부들의 가르침, 공의회의 언급, 현대적 해석, 사목적 적용, 그리고 한국 천주교 전례 관행에 이르기까지 주님 승천 대축일을 다각도로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 교리에서의 주님 승천
가톨릭 신앙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통해 고백합니다. 이는 초대 교회 공의회에서 확립된 핵심 교리로서, 니케아 공의회(서기 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서기 381년)의 신경에 명시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신앙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도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신앙의 중요한 신비로 다루며,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부활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이며 초월적인 사건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인성이 완전히 영광스럽게 높여진 순간입니다. 교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버리시려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 되시기 위해 승천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곧 구원 사업의 완성을 뜻하며, 승천을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완전히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에도 성부 오른편에서 영원한 대사제이자 중재자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며,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써 교회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감으로써, 우리의 인간 본성도 그분 안에서 높임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영광 속에 들어가심으로써, 그 몸의 지체인 우리도 언젠가 그분을 따라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리는 신자들에게 현세를 살아가면서도 궁극적으로 하늘 시민으로서의 희망과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북돋워 줍니다.
한편, “승천”(Ascension)이라는 용어 자체도 교리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 쓰이는 ascensio는 “스스로 올라감”을 뜻하여, 예수님께서 신적 권능으로 스스로 하늘에 올라가셨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엘리야나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에 의해 들려 올라간(assumptio, 피승천/승천됨) 경우와 구분되는 표현입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아날렙시스(αναληψις, 올려짐) 혹은 에피소조메네(επισωζομενη, 위로부터 오는 구원)라고 불러,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올라가심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하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칭들은 모두 예수 승천의 구원론적 의미—곧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류 구원이 완성되고 우리에게 하늘로 향하는 구원의 은총이 주어졌다는 교리적 진리—를 강조합니다.
요약하면, 가톨릭 교리에서 주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영광을 온전히 취하시어 하늘에 들어가신 사건으로, 인류 구원의 완성이자 우리를 위한 희망의 근거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보자로서 계속 교회와 함께하시며, 우리 역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성경적 배경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몇 군데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그 장면이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자, 제자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전합니다. 또한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시고,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게 되셨다”고 증언합니다. 사도들은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다가 천사로부터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을 듣게 됩니다(사도 1,11).
그 외에 마르코 복음서도 짧게 언급하기를,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전합니다(마르 16,19). 요한 복음서에는 승천 장면의 직접 기록은 없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요한 20,17)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아버지께 승천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 6장 62절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도 “그리스도 예수는 …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로마 8,34 등)와 같이 예수님의 승천과 승귀(昇貴)를 전제한 가르침을 곳곳에서 보여줍니다. 예컨대 에페소서 4장 8절에서는 시편을 인용하여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많은 포로들을 이끄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하며,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은사를 주심을 말합니다.
이렇듯 성경은 예수님의 승천을 역사적 사실로 전하는 동시에 신학적 의미를 함께 드러냅니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묘사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가장 낮아지셨다가(겟세마니와 십자가의 수난) 마침내 하느님의 권능으로 높여지심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복음서가 승천을 구름과 하늘이라는 가시적 이미지로 묘사한 것은, 예수님이 하늘에 속한 영광으로 돌아가심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승천 사건 직후에 천사가 전한 메시지는 재림의 약속을 내포하여, 승천이 곧 장차 올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시작임을 시사합니다. 결국 강생과 부활, 승천은 하나로 연결된 구원의 신비로서, 이로써 비로소 인간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길이 열렸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전례적 의미와 축일의 중요성
주님 승천 대축일은 교회 전례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전통적으로 부활절로부터 40일째 되는 날인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거행되며, 부활 시기의 절정을 이루는 축일입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구원 사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날로, 교회는 큰 기쁨과 경외 속에 이 신비를 경축합니다.
전례적으로 승천 대축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과 더불어 부활 신비를 완성하는 3대 축일 중 하나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초대 교회 이후 이 축일은 점차 교회력에서 확고한 자리을 잡았고, 역사적으로 파스카(부활)와 견줄 만큼 거룩한 큰 축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서방 전례 전통에서는 승천 대축일을 다른 큰 축일들처럼 성야 미사를 드리고, 한 주간 팔일 축제를 지내며(8부 축일, Octave) 지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수 승천 후 열흘째에 성령 강림이 이뤄진 데에 맞추어, 교회는 승천일부터 성령 강림 전날까지 9일 간의 기도(노베나)를 바치며 성령을 기다리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승천 후 함께 모여 열흘간 기도하며 성령 강림을 준비한 데에서 유래한 거룩한 전통입니다.
승천 대축일의 전례 텍스트와 상징은 이 축일의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미사의 감사송(프레페이스)에서 교회는 “승천하신 주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 되셨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영광에 들어가셨나니, 그의 지체인 우리도 그분을 따라 하늘에 오를 희망을 갖게 되었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이 기도문처럼, 전례는 승천의 의미를 희망과 기쁨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지상 삶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승천 직후 “크게 기뻐하며”(루카 24,52)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듯이, 교회도 이 날 인간 구원의 완성과 천상의 문이 열림을 기뻐합니다.
또한 전례는 승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주권과 왕권이 확립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다니엘 7장)가 성취되어, “그분께 영원한 권능과 왕권이 주어지시어 모든 민족이 그분을 섬기게 되었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승천 축일은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통치와 교회의 머리되심을 경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미사 독서와 화답송에서도 “하느님께서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시편 47,6) 등의 구절이 노래되어, 승천하시는 주님의 장엄함과 왕권을 찬미합니다.
전례 관습적으로는 과거 일부 교회에서 부활 시기 동안 제단 옆에 켜 두었던 파스카 초를 승천 축일에 끄는 예식이 있었는데,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이었습니다. 비록 현대 전례에서는 일반적으로 파스카 초를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밝히는 관행으로 바뀌었지만, 이처럼 전례는 빛과 불꽃, 향연과 행렬 등의 상징을 통해 승천의 신비를 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일부 지역에서는 승천 축일에 부활초를 들고 교회 밖으로 나아가는 행렬을 하거나, 교회 천장에 열려진 구멍을 통해 부활초나 예수상(像)을 위로 올리는 극적인 재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예식들은 모두 승천하신 주님의 영광과 하늘에 들어올려진 인간 본성의 높임을 경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례적 측면에서 주님 승천 대축일은 부활 시기의 정점이자 완성으로서, 교회가 “주님께서 승천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고 우리에게 영광의 미래가 보증되었다”는 신앙을 기념하고 선포하는 날입니다. 이 날의 전례는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새롭게 하며, 동시에 다가오는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축일의 역사적 발전 과정
초대 교회로부터 예수 승천의 신앙은 전해져 왔으나, 이를 별도의 축일로 기념하는 전례 전통은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5세기 초의 문헌들에 이미 승천 축일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나타나며, 성 아우구스티노(북아프리카의 주교, 354430년)는 승천 대축일의 기원이 사도시대에까지 올라간다고 증언합니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설교에서 “우리가 지키는 주님의 승천 축일은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축일이 교회에 널리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앞선 4세기 말엽의 성인들도 승천을 기념하는 전통을 증언하는데, 콘스탄티노플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황금입, 347407년)와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335~395년) 등이 그 예입니다. 그들의 저술에 승천 축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님 승천의 기념은 교회사 초기부터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 증거는 4세기 후반부터 나타납니다. 에테리아(Etheria) 또는 실비아라고 불리는 한 경건한 여성 순례자가 4세기 말(약 380년경) 성지를 순례하며 기록한 여행기 「에테리아의 순례기」에는,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의 한 성당에서 승천 축일 전야(Vigil)와 축일 당일의 전례가 거행되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이미 부활 40일 후를 승천 축일로 지내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한편, 4세기 초 스페인 지방교회 회의인 엘비라 공의회(Elvira, c.300년경)의 기록 중에는, 부활 40일째에 별도의 축일을 지내고 50일째인 성령강림을 소홀히 하는 관행을 책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곧 초기 교회 일부에서는 승천 기념을 오순절(성령 강림)과 통합하여 지내다가, 차츰 40일째 되는 날을 구분하여 기념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몇몇 학자들은 부활절부터 성령강림까지 50일간을 하나의 큰 축제로 지내던 전통이 시간이 흐르면서 부활 40일째를 독립된 승천 축일로 분리시켰다고 해석합니다.
5세기경에 이르면 승천 대축일은 이미 전 교회에 널리 받아들여진 의무 축일이 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시대에 이 축일이 “교회 전체의 보편적 관습”으로 자리잡았고, 이후로도 보편 교회는 이를 중요한 신앙 축일로 엄격히 지켜왔습니다. 중세에 이르러 승천 축일은 성목요일, 성탄, 주현, 성모 승천 등과 함께 중요한 의무축일로 확고히 정착하였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전례 문화와 민간 신심이 발달했습니다. 가령 중세 유럽에서는 승천 축일에 들판과 농경지를 행렬하며 축복하는 관습이나, 교회 지붕에 마련된 구멍으로 예수 승천 장면을 모사하는 극적인 신심 행위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15세기 이후 서방교회 전례력에는 승천 축일 뒤로 팔일 축제(Octave) 기간이 설정되어 성령 강림 전까지 아홉 날 동안 신자들이 특별한 기도로 성령을 기다리도록 장려되었습니다. 이러한 팔일 축제와 9일 기도의 관습은 근대에 이르러 교황 레오 13세 등이 공식적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 전 9일을 노베나로 정하여 지내도록 함으로써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의 전례 개혁 이후에도 주님 승천 대축일의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다만, 현대의 실정에 맞게 일부 실용적인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공의회 이후 교회법은 각 지역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승천 대축일을 주일로 옮겨 지낼 수 있는 여지를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평일에 거행되는 경우 신자들의 참여가 저조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신자가 함께 축일의 은총을 나누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들에서는 승천 대축일을 전통대로 목요일에 지내지만,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더 많은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이러한 전례 관행에 대해서는 글의 후반부에서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요약하면, 주님 승천 대축일은 사도시대에서 유래된 유서 깊은 축일로서, 4~5세기경에 별도의 축일로 정착하여 전 세계 교회가 기념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전례 거행 방식이나 부수적 관습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경축하는 신앙의 핵심은 변함없이 전승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오늘날까지 승천 대축일은 교회의 소중한 유산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교부들의 가르침
교부들, 즉 초대교회의 성인 지도자들은 주님의 승천 신비에 대해 깊은 통찰과 영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이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승천 축일의 신앙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 아우구스티노는 승천 대축일의 기원을 사도들에게까지 돌릴 만큼 이 축일을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영적 승천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승천 축일 설교에서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셨으니 우리의 마음도 그분과 함께 올라갑시다”라고 권고하며, 예수님께서 비록 눈앞에서 하늘로 떠나셨지만 신비로운 방식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도 이미 그분과 함께 하늘에 올랐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또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곳에 그 몸의 지체인 교회도 따라 올라갈 것이다”고 말하며, 승천이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합일 및 우리의 궁극적 영광을 예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승천 신비를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의 불가분의 결합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동방 교회의 교부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황금의 입) 역시 예수 승천의 영적 의미를 묵상했습니다. 그는 한 설교에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늘에 길을 열어주셨다”며, 승천하신 주님을 통해 인간이 더 이상 땅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설파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어 인성을 지닌 채 성부 오른편에 앉으심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천상에 자기 자리를 얻게 되었고, 이는 신자들에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삶을 살도록 초대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제자들이 승천 후 기뻐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본성을 지니시고 천사들보다 높이 올라가셨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희망과 기쁨의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성 그레고리오 니사의는 그리스도의 강생부터 승천까지의 신비를 일관되게 설명하면서, 승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드러났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늘의 말씀이 땅으로 내려온 신비이고, 승천은 그 말씀이 우리 인간본성과 하나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 신비입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고, 인간이 신성에 참여하는 길(신화를 통한 구원)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즉, 그레고리오 성인은 승천을 인류의 신적 생명 참여 관점에서 이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들어올려진 높이를 강조했습니다.
서방 교회의 교부인 교황 성 레오 대제(440~461년 재위)는 주님 승천에 대한 아름다운 설교를 남겼습니다. 그는 주님 승천으로 제자들이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기쁨에 찬 것을 언급하며,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천사들의 품위 이상으로 높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레오 대제는 “복된 그 날, 제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모든 천상 피조물의 품위 위로, 천사들과 대천사들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우리 인간이 성부 오른편에까지 올라가, 그분과 결합된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즉, 성자께서 취하신 인간성이 삼위일체의 영광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인류에게 영광의 자리가 약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승천이야말로 인간 구원의 희망의 원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이처럼 교부들은 주님의 승천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교회의 신비와 성도의 삶에 깊이 관련된 구원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1)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따라가야 할 영광의 목표요, (2)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높임받아 하늘에 들여올려진 희망의 근거이며 , (3) 신자들이 마음을 들어 하늘의 것을 추구해야 할 영적 동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승천 대축일의 영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공의회의 언급
주님의 승천 교리는 교회 역사상 여러 공의회들을 통해 거듭 확인되고 선언되었습니다. 먼저 니케아 공의회(제1차 세계 공의회, 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우리 신앙의 공식 고백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확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그분은 영광 속에 다시 오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시리라”는 신앙 진술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 승천과 재림의 진리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보편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 가톨릭을 포함한 대다수 그리스도교 전통이 이 신경을 함께 고백하며, 예수 승천 교리는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핵심 요소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공의회는 간접적으로 승천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 등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논의한 초기 공의회들은 예수님의 참하느님이시자 참사람이심을 정의하면서, 그분의 강생부터 수난, 부활과 승천, 재림에 이르는 전 구원 사건을 하나의 일관된 신비로 다루었습니다. 이를 통해 공의회들은 승천이 부활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드러나는 핵심 사건임을 전제하였으며, 잘못된 교리(이단)들이 예수님의 승천이나 승귀를 축소하거나 부인하지 못하도록 교리를 명확히 확립했습니다.
중세의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나 근대의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년) 등에서도 신앙 고백 조항을 다듬고 미사와 전례를 정비하며 승천 신앙을 재확인했습니다. 예컨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편찬된 로마 교리서(1566년)는 사도신경 주해에서 예수 승천의 의미를 자세히 풀이하면서, 주님 승천이 “우리 구원의 성취이자,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인성으로 취하심으로써 신자들에게 주신 위로와 희망”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종교개혁 등의 혼란기에 가톨릭 신자들의 바른 신앙을 지키는 지침이 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는 전례 헌장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에서 “한 해의 전례력을 통하여 교회는 구세주의 신비를 펼쳐 보인다”며, 특히 부활부터 승천과 성령 강림에 이르는 구원의 완성을 경축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공의회 문헌은 구체적으로 승천 축일을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파스카 신비의 완성으로서 승천의 중요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의회는 매주일 신자들이 신앙을 고백할 때 니케아 신경을 바치도록 권장하며, 신경 속에 포함된 승천 교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현대 교회의 결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 「인터 미리피카」(Inter Mirifica, 1963년)에서 제안된 홍보 주일의 제정입니다. 공의회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세계 교회가 매년 하루를 정해 미디어 사도직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권고를 실천에 옮겨 1967년 부활 제7주일(승천 대축일)에 첫 번째 세계 홍보 주일(Communications Day)을 실시했고, 그 후로 이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는 승천 축일이 지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과도 부합하는 날로서, 공의회 정신을 구현한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여러 시대의 공의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교리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전승해 왔습니다. 신경에 명문화된 승천 신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러 복음 선포를 위한 특별한 날을 승천 축일과 연결시킨 결정에 이르기까지, 공의회들은 승천의 진리와 그 목소리를 꾸준히 확인하고 강조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시대를 넘어 동일한 신앙, 곧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적 해석 및 의미
오늘날 교회는 주님 승천의 신비를 현대인의 삶과 신앙 여정에 비추어 새로운 의미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승천 사건을 과거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만 두지 않고, 현재 진행형의 구원 역사로 이해하며 그 실천적 함의를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승천 신비는 현대 신앙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주님 승천 대축일에 맞추어 전한 강론에서 “주님의 승천은 우리를 떠나 멀어지신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이 완성되어 우리에게 희망이 선사된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우리의 인간성을 지니신 채 하느님 품에 안기심으로써, 우리 인간 모두의 희망이 그분 안에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또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 근거한다”고 말하며, 신자들이 절망과 낙담이 가득한 세상에서 기쁘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현대 교회는 승천을 세상이 줄 수 없는 희망의 원천으로 선포하고, 상처받고 지친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복음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승천은 예수님의 현존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강조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으로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이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거나 멀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언제나 함께 계심을 뜻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분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임재”라고 설명하면서, 승천 이후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세상의 종말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앙을 환기시켰습니다. 사실 예수님 자신도 최후 명령에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신자들은 승천을 그리스도의 보편적 임재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세상 어디서나 주님을 발견하고 증언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승천 신비는 또한 교회의 사명과 직결되어 현대적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성령을 받아 세상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사도 1,8) 혹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고 분부하신 것은, 교회에 맡겨진 선교 사명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현대 교회는 이 명령을 특별히 상기하며, 승천 대축일을 선교와 증거의 파견식으로 여깁니다. 신자들은 주님 승천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왜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느냐”(사도 1,11)고 묻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도 신앙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살아내고 전하라는 촉구로 들립니다. 따라서 현대의 사목자들은 승천 축일을 맞아 신자들이 신앙을 관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전하는 살아있는 증인이 될 것을 강하게 설교합니다.
아울러 승천은 창조 세계와 인간 역사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도 해석됩니다. 현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인류와 우주의 궁극적 상승으로 바라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에 들어올려졌고, 창조세계 역시 새롭게 변화될 운명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승천은 단지 예수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의 시작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나타남”(로마 8,19)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그 영광의 선취(先取)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신앙인들은 승천을 묵상하며 피조물에 대한 책임과 세상의 변혁에 대한 열정을 되새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보증된 새 창조의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 가치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성 생활의 측면에서도 승천은 현대적으로 조명됩니다. 신자들은 삶 속에서 자주 “마음의 승천”을 실천하도록 권고됩니다. 곧 미사 때 사제가 “마음을 드높이”(Sursum corda) 하라고 초대하듯이,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항상 마음을 주님께 들어 올려 하늘의 관점에서 땅의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하늘 시민으로서의 품위와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성 카롤로 보로메오 등의 성인은 승천 축일 묵상에서 “그리스도께서 계신 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콜로 3,2)는 바오로의 권고를 강조하며, 승천의 영성을 일상의 성화로 연결시켰습니다.
요컨대 현대 교회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통하여 신자들이 희망의 영성을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언하는 삶으로 파견받으며, 하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과 절망이 많은 시대이지만, “승천하신 주님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임을 교회는 힘주어 선포합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마음을 위로 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 이미 영광을 취하신 주님의 힘으로 새로운 인류와 세상을 일구는 데 참여하게 됩니다.
사목적 적용
주님 승천 대축일의 신비는 신학적 의미와 더불어 구체적인 신앙 생활의 지침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거룩한 신비를 기념할 때 단순한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사목 현장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첫째로, 전례 교육과 설교를 통한 사목적 적용이 중요합니다. 사제들은 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신자들에게 이 축일의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주는 교훈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느냐?”(사도 1,11)라는 천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현실을 도피하며 막연히 하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 전에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며, 오늘날 가정과 일터, 사회 속에서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는 것이 승천 신앙의 살아있는 실천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설교를 통해 신자들은 승천 축일이 자신들의 사명 갱신의 날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둘째로, 기도 생활에서의 적용입니다. 교회는 승천 축일을 기점으로 성령 강림까지 9일간 지속되는 전통적인 성령 novena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장합니다. 본당이나 공동체 차원에서 승천 대축일부터 매일 묵주기도나 성령을 청하는 기도를 함께 바치도록 장려하며, 이를 통해 신자들이 사도들과 성모님이 한마음으로 성령을 기다렸던 마음을 본받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신자들은 이 시기에 더욱 열심한 기도로 자신을 성찰하고 성령의 은총을 구함으로써, 승천하신 주님의 약속(“너희에게 성령을 보내리라”)을 체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 실천은 승천 신비를 성령 강림과 연결된 구원의 단계로 체험하게 하여, 신앙 생활에 깊이를 더해 줍니다.
셋째로, 교회 공동체의 삶에서 승천 신비를 드러내는 다양한 사목 활동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교회에서는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로 지내며, 현대의 “땅끝”이라 할 수 있는 대중 매체를 통한 복음 전파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이 날 본당들은 교구 홍보국이나 가톨릭 매스컴 후원을 위한 모금, 가톨릭 언론 소개, 미디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법에 대한 교육 등을 진행합니다. 이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선교 명령에 응답하여 새로운 선교 지평인 언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려는 사목적 노력입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행사를 통해 신자들은 승천 축일의 의미를 현실의 복음화 사명과 연결 짓게 됩니다.
또 다른 공동체 실천으로는 나눔과 사랑의 실천을 들 수 있습니다. 일부 본당이나 단체에서는 승천 대축일을 맞아 예수님이 제자들을 축복하며 하늘로 오르신 장면을 기억하여,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축복하고 섬기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노약자나 병자를 방문하여 기도해주거나, 교도소, 양로원 등에 신자들이 찾아가 미사를 함께 드리는 등의 사랑 실천이 장려됩니다. 이는 승천하신 주님께서 여전히 교회의 지체 안에 살아계셔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돌보고 일으켜 세우심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목적 적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개인 영성 생활에서 신자들은 승천 대축일을 계기로 자신의 신앙 태도를 돌아보고 쇄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의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내 마음이 과연 하늘에 가 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세속적인 걱정과 욕심에 붙잡혀 있는지 성찰해 봅니다. 승천은 마음의 시선을 하느님께 드는 것을 의미하므로, 신자들은 이 날 **정신적 ‘마음 승천’**을 실천에 옮겨 세속적인 집착을 끊고 영원한 가치를 향해 마음을 돌릴 것을 다짐합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승천 축일에 자신의 생활 속 우선순위를 점검하며,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첫자리에 모시는 결심을 새롭게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례 거행의 활성화입니다. 사목자들은 승천 대축일 전례를 보다 뜻깊게 거행하기 위해 미사 중에 교우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합니다. 예컨대 성가대는 승천의 기쁨을 표현하는 장엄한 성가를 준비하고, 신자들은 응답과 기도에 마음을 모아 참여합니다. 또 미사 후에는 가족끼리 승천 축일의 의미를 나누는 신앙 대화를 갖거나, 아이들에게 예수 승천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며 교육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승천 대축일을 단순히 “의무적으로 미사 참례하는 날”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활기차게 신앙을 체험하는 날로 만들게 됩니다.
정리하면, 사목적 차원에서 주님 승천 대축일은 신자들의 신앙을 삶으로 연결하는 실천의 기회입니다. 교회는 교육과 설교, 기도와 전례, 선교와 봉사 등 다방면에서 이 축일의 정신을 구현하도록 이끕니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승천하신 주님의 축복 속에 세상에 파견되어,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사도 1,8)으로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새롭게 얻게 됩니다. 승천 대축일은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광 속에 들어가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동시에 그분의 몸인 교회인 우리가 그 뒤를 따라 힘차게 걸어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은총의 날인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 관행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주님 승천 대축일은 전 세계 교회와 같은 보편적 의미를 지니면서도, 현실 사목에 맞춘 특유의 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 의무 축일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전례 거행일을 조정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부활절로부터 40일째 목요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교구가 이를 부활 제7주일(부활 후 일곱째 주일)로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이는 바쁜 현대인들의 평일 미사 참여가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 결정으로, 더 많은 신자가 함께 승천 신비를 기념하도록 한 배려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신자들은 매년 부활 시기 마지막 주일미사를 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로 봉헌하며, 이어지는 월요일부터 연중시기가 재개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
또한 한국 천주교회는 1980년부터 매년 주님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Communications Sunday)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이는 교황청이 제정한 세계 홍보 주일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매년 이 날 교황님의 홍보 주일 담화문을 전례 중에 소개하고, 교회가 매스컴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삼습니다. 구체적으로 각 본당이나 교구에서는 가톨릭 언론매체(예: 가톨릭신문, 평화방송 등)의 활동을 알리고 후원금을 모금하거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하는 등 현대 홍보 사도직을 장려하는 행사를 갖습니다. 한국 교회가 특히 이 날을 홍보 주일로 강조해온 것은, 한때 언론의 제약 속에서 신앙을 지켜왔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경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승천 대축일에 세상의 소통 수단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전달자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전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교회의 미사 전례는 세계 공통의 로마 전례를 따르므로 승천 대축일 미사 경본과 성서 독서도 동일합니다. 미사 독서에서는 사도행전 1장의 승천 기사와 에페소서, 마태오 혹은 마르코 복음의 파견 말씀이 낭독됩니다. 한국어 미사 경본은 예수님의 말씀을 친근한 한국어로 전하며, 신자들은 응답송과 복음 환호송으로 승천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예식 면에서 특별히 한국만의 독특한 관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본당의 사정에 따라 승천 축일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연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활 초 옆에 승천을 상징하는 작은 구름 장식이나, 제대 꽃꽂이에 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른색 리본을 사용하는 등 미적인 표현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또한 일부 본당에서는 승천 축일에 첫영성체나 견진성사를 배치하여, 신자들의 신앙 여정에 특별한 이정표를 승천의 은총과 연결짓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부활 시기에 부활초를 환히 밝히며 신앙을 새롭게 하는데, 승천 대축일은 부활초가 마지막으로 환히 타오르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비록 공식적으로 부활초를 이날 끄지는 않지만, 신자들은 마음속으로 “이제 곧 성령을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부활 시기의 영적 결산을 하곤 합니다. 특히 교구별로 부활 시기 동안 전 신자가 참여하는 부활 판공성사(고해성사)가 마무리되고, 승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까지 이어지는 묵주기도나 성령송가(聖靈頌歌) 바치기가 독려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승천-성령강림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흐름에 동참하려는 한국 교회의 열의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영성과 승천 축일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록 공식 전례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교회의 많은 순교자들은 박해 속에서 죽음을 맞으며 “내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나이다”라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았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통해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는 자신들의 승천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통 속에서, 현대의 한국 신자들도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순교자들의 하늘 영광 참여를 떠올리고, 자신도 일상에서 작은 순교의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 특유의 영성적 적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한국 천주교회의 주님 승천 대축일 관행은 보편 교회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한국적 목회 환경과 필요에 맞게 구현되고 있습니다. 부활 제7주일로의 이동, 홍보 주일의 지정, 그리고 신자들의 적극적인 전례 참여와 실천적 결심 등은 한국 교회가 승천 신비를 살아 있는 신앙 행사로 가꾸어 가는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신자들은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을 기념할 뿐 아니라, 그 주님의 파견을 받아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은총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참고 및 출처
- 성경: 루카 24,51-53, 사도 1,6-11 등
- 가톨릭 교회 교리서 659~667항 (CCC)
-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 교부들의 설교 모음 (주님 승천 관련 해설 자료)
- 가톨릭 대사전 승천 항목
- 가톨릭신문 및 가톨릭타임즈 기사: 주님 승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 의미, 교황 2025년 희년 공식 선포
- Vatican News 및 Catholic Online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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