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신비

환희의 신비 다섯 장면을 고전 성화 양식으로 그린 대표 이미지

 가톨릭 전례와 영성 전통에서 환희의 신비(Joyful Mysteries)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유년 시절의 다섯 가지 사건을 묵상하는 신비입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환희의 신비는 강생 사건에서 방사되는 기쁨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하며, 첫 번째 신비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한 “기뻐하여라”라는 인사말에 메시아적 기쁨의 초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신비—① 예수님의 탄생 예고(수태고지), ②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③ 예수님의 탄생(성탄), ④ 아기 예수님의 성전 봉헌, ⑤ 소년 예수님의 성전 현현—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강생)를 중심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시작되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구원의 서막을 이룹니다. 이제 각 신비를 성경과 교회 교리에 비추어 살펴보고,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와 기도문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각 신비를 천천히 읽고 묵상하시며, 필요할 때 잠시 멈춰 기도와 침묵 속에 머물러보시기 바랍니다.

제1단 예수님의 탄생 예고 – 마리아의 수태고지

나자렛에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는 마리아의 장면

관련 성경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래아 나자렛의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인사에 놀란 마리아에게 천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할 것을 전하지요. 마리아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소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겸손하고도 담대한 “예, fiat(피앗)”의 순간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가 시작됩니다 (요한 1,14 참조).

교의적 배경

수태고지 때 마리아의 응답은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을 통해 구원을 이루길 바라셨고, 마리아는 자신의 순명으로 새 하와가 되었습니다. 교부 성 이레네오는 “마리아께서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고 말하며 , 불신앙으로 인류를 묶어 버린 하와의 매듭을 마리아의 믿음이 풀어 주었다고 해석합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새 하와, “모든 산 이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게 됩니다. 또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른 대로(루카 1,43), 교회는 마리아를 천주의 성모(테오토코스)로 신앙 고백합니다. 이는 태중에 잉태된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시며,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의로서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정의되었습니다. 한편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 “은총이 가득한 이여”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된 분임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기념하며, 하느님께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이를 특별한 은총으로 정결케 하셨음을 가르칩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 나자렛의 작은 가정집에 방문한 천사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십시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마리아라는 처녀에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전해지는 장면은, 하느님께서 겸손한 이를 들어 높이심을 보여줍니다 (루카 1,52-53 참조). 마리아는 두려움과 당혹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천사의 말에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마리아처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명의 자세를 돌아봅시다.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말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내 삶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순응해야 할 부분을 찾아보십시오. 교부들은 마리아가 마음으로 먼저 그리스도를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동정 마리아는 태중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전에 먼저 마음속 믿음으로 그분을 잉태하였다”라고 가르치지요. 우리도 마음 안에 말씀을 받아들여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모실 때, 비로소 그분이 우리 안에 탄생하시어 살아계시게 됩니다.

묵상을 돕는 기도

 주님, 당신의 종 마리아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순명의 영성을 제게도 허락하소서.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제 삶을 통하여 당신 강생의 신비가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온 세상이 숨죽여 기다리던 마리아의 대답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이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이 순명의 한마디로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모님처럼 우리도 ‘예’라고 응답할 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육화됩니다.” – 성 베르나르도 (주님 탄생 예고에 관한 설교에서). (해설: 성 베르나르도는 마리아의 응답을 인류 구원의 결정적 순간으로 묘사하며, 모든 천사와 사람이 마리아의 입을 주목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마리아의 “예”는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제2단 성모님의 방문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유다 산골에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 인사하는 장면

관련 성경

천사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곧바로 유다 산악 지방으로 길을 떠나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방문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고 외칩니다. 마리아의 인사 소리에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세례자 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오시다니!”라며 감격하지요. 이어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위대한 기도인 “마니피캇”(Magnificat, 루카 1,46-55)을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내 마음이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 이 노래 안에서 마리아의 겸손과 하느님의 자비가 선포되고, 가난한 이들과 겸손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는 하느님의 정의가 찬양됩니다 .

교의적 배경

이 신비는 성령의 활약과 성모 마리아의 중개를 잘 보여줍니다.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은 마리아가 가진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살아있는 ‘언약의 궤’로서, 하느님의 임재를 품고 엘리사벳의 가정을 축복했음을 연상시킵니다. 구약에서 다윗 왕이 언약의 궤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내게 주님의 궤가 오다니!”(2사무엘 6,9) 하며 기뻐한 것처럼, 엘리사벳도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오시다니!”라고 환호합니다. 교회는 여기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상(母常)으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모범적 방문을 발견합니다. 또한 엘리사벳의 아기를 성령께서 뛰놀게 하신 것은, 세례자 요한이 모태에서부터 성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예수님의 도래가 이미 태중의 생명에게까지 기쁨을 준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처음부터 잉태된 생명 안에서 기뻐 춤추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은 교회의 기도 속에 살아 있습니다. 교회는 매일 저녁기도 때 이 찬가를 바치며, 가난한 이들을 높이시고 부유한 자를 낮추시는 하느님의 구원 역전을 선포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Marialis Cultus에서 “마니피캇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프로그램”이라 부르며, 모든 시대에 신앙인들이 이 노래로 복음을 삶에 적용해 왔다고 가르칩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마리아의 발걸음을 떠올려 봅시다. 천사의 발현 직후, 마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 성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기쁨에 설레어 서둘러 갔다”고 해설합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신 마리아는 그 기쁨을 이웃과 즉시 나눈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총과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데 얼마나 열심인가?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친교 속에 임하시는 성령의 기쁨을 보여줍니다. 두 어머니와 두 아기의 만남 한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지요. 우리의 신앙 생활도 홀로가 아니라 이렇게 공동체와 이웃 안에서 서로의 믿음을 북돋으며 성장함을 묵상해봅시다. 또한 마리아의 마니피캇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해 보세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셨다” 는 기도 속에 드러난 하느님의 가치관을 묵상하며, 내가 실천해야 할 겸손과 나눔의 덕을 생각해봅니다.

묵상을 돕는 기도

찬미받으소서, 주 하느님! 당신께서 베푸신 은총을 나눌 때 기쁨이 배가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성모님처럼 이웃에게 서둘러 달려가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성령의 기쁨으로 서로를 채워 주소서.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찬양하며, 제 삶으로 마니피캇의 찬미를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암브로시오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녀는 의심 없이 믿었고,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유다 산골로 향했습니다. 성령의 은총은 더딤이 없고, 사랑의 축복은 지체되지 않습니다” . 또 암브로시오 성인은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에 대해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었고, 요한은 은총의 실재를 느꼈다. 여인은 여인의 방문을 느꼈지만, 아이는 주님의 현존을 느껴 뛰놀았다”고 말합니다. (해설: 이 말씀은 마리아의 방문이 단순한 친척 간 만남을 넘어, 예수의 현존을 전하는 복음적 방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방문할 때 주님의 사랑과 현존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면, 그 만남은 거룩한 친교가 될 것입니다.)


제3단 예수님의 탄생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는 장면

관련 성경

로마 황제의 호적 명령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서 예수님을 탄생시킵니다.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화려한 궁전이 아닌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장면입니다. 그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한다. 오늘 다윗의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다!”고 외칩니다. 곧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고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목자들은 달려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한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교의적 배경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의 겸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말씀(로고스)께서는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교리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가정의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이 가난 속에서 하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한 이들은 권력자나 학자가 아닌 양치기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복음의 진리가 예수님의 탄생 순간부터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예수 성탄으로 이루어진 일치는 놀랍습니다. 천사는 “오늘 구원자가 나셨다”고 선포하며, 하늘의 찬미가 울려 퍼지고(루카 2,14), 동방의 박사들까지 별을 따라 경배하러 옵니다 (마태 2,1-12 참조). 교회는 성탄의 신비를 가리켜 “경이로운 교환”이라고 부릅니다.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타나시오 등이 강조한 바대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을 하느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 즉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요한 1,14),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위대한 신비를 기념하며, 교회는 매년 성탄 시기에 “말씀이 살이 되었다”는 요한의 복음을 낭독하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가톨릭 전통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1223년 그레초에서 세계 최초의 구유(Nativity scene)를 만들어 사람들이 예수 탄생 장면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성탄 신비에 대한 신앙과 감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성탄마다 구유를 꾸미며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베들레헴의 차가운 동굴과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인간의 아기로 태어나 인간의 가난과 연약함을 친히 겪으신 장면입니다.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겸손 앞에서, 나는 어떠한 응답을 드릴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또한 목자들의 믿음과 순박함을 묵상해 봅시다. 그들은 천사의 말을 듣자마자 “베들레헴으로 갑시다!” 하며 한걸음에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뵙고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첫 번째 복음 선포자가 되었지요. 나는 복음을 접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목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주님께 나아가려는 열망이 있는지, 또 그 만남의 체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 하는지 돌아봅시다. 이 신비의 또 다른 등장인물은 요셉 성인입니다. 요셉은 말없이 곁을 지키며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고 돌봅니다. 그는 한 아버지로서 가족을 책임지면서도, 이 아기가 자신보다 크신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고 겸손히 섬깁니다. 요셉의 침묵과 충실함을 본받아, 가정에서 내가 지녀야 할 믿음의 역할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여 되새겼듯이, 우리도 이 신비를 마음에 품고 곰곰이 묵상합시다. 분주한 성탄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그 본질인 하느님의 사랑의 탄생을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묵상을 돕는 기도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당신의 탄생을 통하여 제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니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 구유에도 오시어 자리를 잡으소서. 세상의 영광과 부를 좇느라 당신께 드릴 자리를 비워두지 못한 저희를 용서하시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삶으로 증언하며, “땅에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신비를 뜨겁게 묵상한 나머지, 사람들의 눈으로도 직접 보고 느끼게 하고자 구유 경배 전통을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밤, 가난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아, 우리 하느님께서 이렇게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자” 하고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묵상: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우리도 구유 앞에 선 프란치스코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경배하며,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해 봅시다.)


제4단 아기 예수님의 봉헌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하며 안고 기도하는 장면

관련 성경

 모세 율법에 따라 산모의 정결례 기간이 지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맏아들을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가난한 이들이 바치는 산비둘기 한 쌍을 제물로 봉헌하던 그때, 성령의 인도로 성전을 찾은 의로운 사람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는 메시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약속을 받고 오랜 세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려 온 사람이었습니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하소서. 제 눈이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고 기도드리며, 예수님을 만민에게 비추는 빛으로 선포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 말에 놀라자,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엄숙한 예언을 전하지요: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할 것입니다. 또한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터인데, 당신의 영혼은 칼에 찔릴 것입니다”. 이때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녀 한나도 다가와 아기에게 관한 이야기를 모든 사람에게 전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갑니다.

교의적 배경

 예수님의 성전 봉헌은 구약 율법의 성취이자 신약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율법은 “태를 연 모든 첫아들은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출애 13,2; 루카 2,23 참조)고 명했고, 성가정은 이를 충실히 지킵니다. 흥미롭게도, 봉헌 자체는 하느님이신 예수님께는 필요치 않은 것이었지만, “율법에 정해진 모든 일을 마치신” (루카 2,39) 성모님과 성 요셉의 순명은 예수님이 장차 율법을 완성하시기까지 율법 아래 자라나심을 보여줍니다. 교부들은 이 장면에서 마리아의 헌신과 고통을 주목합니다. 성전에서 아들을 바치는 마리아의 모습은, 훗날 골고타에서 아들을 바치는 모습의 예표입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시메온의 예언을 주석하며 마리아의 마음이 겪을 아픔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오 복되신 어머니, 참으로 한 자루 칼이 당신 영혼을 꿰뚫었습니다… 아드님 예수님의 살이 창에 찔리기 전에 이미 어머니의 영혼이 고통에 찔렸나이다. …우리는 당신을 순교자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분으로 여나이다”. 이는 마리아께서 구속 사업에 동참하여, 아들의 수난에 마음으로 결합했음을 교회가 성찰하는 근거가 됩니다(루가 2,35의 예언). 그러나 동시에 이 신비는 기쁨의 신비로서, 시메온의 찬미가 알려주듯 “제 눈이 구원을 보았나이다”라는 감격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메온의 노래(“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를 라틴어로 Nunc Dimittis라 하여, 매일 밤기도 (Kom플레타)에 노래합니다. 이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당신의 구원을 보았으니 평화로이 떠나게 하소서” 하는 영적 봉헌의 태도를 갖게 하지요. 또한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만민에게 비추는 계시의 빛”이라고 선언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세주임을 증언합니다. 사실 성전 봉헌 축일(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은 교회가 봉헌생활자의 날로 지내며, 한나와 시메온처럼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이들의 삶을 기념합니다. 아울러 모든 신자는 이 신비를 통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의미를 묵상하게 됩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먼저 성전에서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봅시다. 한평생 메시아를 기다려 온 노인은 예수님을 품에 안고 약속의 성취를 체험하며 기쁨에 찬 찬미를 드립니다. 나도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을 “얼굴을 마주 보고”(1코린 13,12) 뵙게 될 터인데, 그 약속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가? 시메온의 경건한 삶과 희망을 본받아 봅니다. 다음으로, 시메온의 예언에 담긴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넘어지거나 일어서게 하고,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활과 수난 과정에서 이 예언은 성취되지요. 우리 사회와 내 삶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표징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혹시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을 거부하거나 불편해하여 반대 표징으로 여기는 모습은 없는지 성찰해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난다는 뜻도 됩니다. 주님의 빛은 우리의 양심과 내면을 비추어 숨은 동기와 죄까지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빛 앞에 정직하게 나 자신을 내어놓고 있는가? 돌아봅시다. 이어지는 “칼이 당신 영혼을 꿰뚫을 것입니다”라는 마리아에 대한 예언은, 기쁨 가운데 섞인 고난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의 예고가 벌써부터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함을 체험합니다. 마리아께서는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이 모든 말씀을 마음에 품고 또 순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이 올 때, 성모님의 믿음과 인내를 떠올려 봅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성부께 봉헌하는 성모님의 심정을 묵상합시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부께 바치며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응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것을 하느님 손에 맡겨드리는 봉헌의 영성을 이 신비 안에서 배웁니다.

묵상을 돕는 기도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 예수님을 봉헌하였던 성모 마리아의 신앙을 기억하며, 저희 자신과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봉헌드립니다. 주님의 뜻이 저희 삶에 이루어지소서. 기쁨 중에도 닥쳐오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언제나 구원의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모 마리아는 이 봉헌을 통해 이미 자신의 아들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희생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께서는 성전 봉헌 때부터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아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순명의 여정을 걸으셨다”라고 가르칩니다(Redemptoris Mater 참조). 또한 성 베르나르도는 “오 거룩한 동정녀여, 당신의 아드님을 바치소서. 우리 모두의 화해를 위하여 이 거룩하고 기꺼운 제물을 봉헌하소서”라고 권고하며, 마리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예수님을 봉헌했음을 상기시킵니다. (묵상: 이처럼 마리아는 자기 아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붙잡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우리도 함께 구원받도록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삶의 크고 작은 순간에 하느님께 다시 내어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제5단 소년 예수님의 성전 현현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토론하는 소년 예수님과 놀라는 마리아와 요셉

관련 성경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시던 해에, 한해의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성가정은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축제를 마치고 귀향하던 길에 예수님은 일행 속에 계실 것이라 생각했던 마리아와 요셉의 곁을 떠나 예루살렘에 머무르셨지요. 하루를 가던 길에야 아들이 없어진 것을 안 부모는 놀라 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흘 만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아냅니다. 그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 앉아 그들의 말을 듣고 질문을 하고 계셨고, 사람들은 소년 예수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어머니 마리아가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른다” 하소연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지 않으셨습니까?”. 부모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순종하며 지내셨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으십니다.

교의적 배경

 열두 살의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 이 사건은, 공생활 전에 나타난 예수님의 유일한 어린 시절 일화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은 성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의 일에 속해 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씀이야말로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을 요약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대목을 두고 “예수님의 신적 아들 의식이 번뜩 드러난 순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왜 찾으셨습니까?”라는 물음은 예수님의 실종을 애타게 찾은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당혹을 주었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는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의 현존 체험의 부재를 겪는 순간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많은 성인들은 영혼의 어둔 밤이나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시기를 통과하며 신앙이 성숙해간다고 증언하지요. 성모님도 이 사건을 통해 아드님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시련을 겪으신 것입니다. 교부들은 이 “사흘간의 예수님 상실”이 훗날 예수님의 사흘간의 무덤 안 계심(부활 전 사흘)과 연결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이 경험을 요셉과 마리아의 작은 파스카 신비 체험이라 부르며, 요셉은 이때의 고통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미리 동참했다고도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시며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신 모습은, 당신의 지혜와 신적 권위를 예시합니다. 나중에 공생활에서 보여줄 가르침의 권위가 이미 나타난 것이지요. “순종하며 지내셨다”는 마지막 구절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부모에 대한 순종과 가정의 덕을 충실히 살았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네 번째 계명(부모 공경)을 완수하신 예수님의 순명으로, 첫 번째 신비의 마리아 순명과 더불어 거룩한 순종의 모범입니다. 한편 마리아가 또다시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했다는 언급은 (루카 2,51) 성모님이 신앙의 묵상자로서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여기서 묵상의 중요성을 배우며, 마리아를 “묵상하는 교회의 모델”로 봅니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흘간을 떠올려봅시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불안과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혹시 내 삶에서도 주님을 놓쳐버린 듯한 공허함이나 어둠을 느낀 적은 없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나는 어떻게 주님을 찾아 헤맸는지, 혹은 무심히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마리아와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으러 나섰고, 마침내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성전, 곧 교회와 성사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체 성사 안에서, 화해 성사 안에서 잃어버렸던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할 수 있지요. 예수님을 다시 찾은 기쁨에 부모는 안도하며 섭섭함을 토로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듣는 이들을 깊은 신비로 초대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일은 성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지상 부모의 걱정보다 하늘 아버지의 사업을 우선시한 것이지요. 여기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절대성을 가르치십니다: “누구든지 내게 와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고 훗날 말씀하신 그 요구의 예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신앙 때문에 세상적인 가치나 심지어 가까운 인간 관계와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내 삶에서 하느님께 최우선 순위를 드리고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우리 마음의 질서를 바로 세워봅시다. 한편으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부모는 “깨닫지 못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믿음의 수수께끼 앞에 계속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시 묵상의 침묵 속에 이 사건을 간직하며 지냈지요. 우리 역시 이해되지 않는 신앙의 수수께끼들을 쉽게 단정하지 말고, 마리아처럼 묵상 속에 품고 주님의 때를 기다려 보는 인내를 배웁시다. 그러면 때가 되어 성령께서 그 뜻을 밝히 깨닫게 해주실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나자렛으로 돌아가 부모께 순종하며 생활하신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평범한 가정의 일원으로 성장하신 약 18년의 “숨어 계신 삶”은, 우리 일상의 거룩함을 일깨워줍니다. 특별한 기적이나 표징이 없어도, 가정과 일터에서 성실히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quý한 것임을 생각하며, 내 일상의 의무와 관계들을 성화시켜나가길 다짐해봅시다.

묵상을 돕는 기도

주 예수님, 때로는 제가 당신을 잃어버린 듯한 삶의 여정을 걷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언제나 성전에서, 성사에서, 말씀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당신을 찾게 하시고, 찾았을 때는 다시는 놓치지 않도록 제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무엇보다도 제 삶의 가장 첫자리를 성부 하느님께 내어드리오니, 당신의 집에 거하는 기쁨을 제게 허락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이 신비를 묵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삼 일 만에 예수님을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느낀 위로의 기쁨은, 때로는 집과 가족을 떠나서라도 하늘에 계신 성부를 섬겨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 영혼 깊이 새겨 놓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찾은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경륜을 받아들여야 했지요. 성 암브로시오는 “이 사건에서 예수님은 부모보다 아버지 하느님께 우선적 의무가 있음을 보이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기대가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본을 따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합시다. 또한 다시 찾은 예수님과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간 성모님의 마음으로, 일상의 삶터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환희의 신비 묵상을 위한 실천 가이드와 신앙의 성장

  1. 말씀과 함께하는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다섯 단락은 모두 성경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해당 신비의 성경 구절을 먼저 읽거나 암송해 보세요. 짧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다”(요한 1,14) 같은 구절을 반복하거나, 길게는 각 신비 본문의 전후 맥락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루카 복음 1장이나 2장의 해당 부분을 읽으면, 말씀의 배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검이자 우리의 묵상에 활력을 주는 원천이므로, 말씀과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2. 상상력을 동원한 관상기도: 환희의 신비는 장면 묵상에 매우 적합합니다. 이 다섯 가지 신비를 하나하나 마음의 눈으로 영화 보듯이 떠올려 보세요.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 엘리사벳의 집에서 나눈 따뜻한 포옹, 베들레헴 구유의 촛불, 성전에서 시메온의 표정, 예수님을 잃고 찾은 성모님의 눈물 등을 상상해봅니다. 이는 이냐시오 성인의 관상기도 방식으로서, 우리를 그 신비의 참여자로 느끼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예수 성탄 묵상 시에 마구간의 한 목격자가 되어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신을 그려보세요. 또는 수태고지 때 마리아 곁에 앉아있는 천사의 수행자라고 상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상 속에 참여하면서 묵상하면 마음이 더욱 주님께 열리고 사랑이 불타오릅니다.
  3. 묵상 노트 또는 영적 일기 쓰기: 묵상 중에 떠오른 은총의 생각이나 느낌을 간단히 메모해 보세요. 예컨대 “오늘 환희의 신비 제2단을 묵상하며 내가 느낀 것은…”, “마니피캇 기도를 통해 깨달은 점은…” 등을 적어두면 좋습니다. 글로 표현하는 작업은 묵상을 체계화하고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볼 때, 내가 어떻게 신앙 안에서 성장해왔는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묵상 노트에 성경 또는 교리 문헌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함께 적어 놓으면, 훗날 그 말씀들이 삶의 지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4. 공동체와 함께하는 묵상: 가능하다면 가족이나 본당 소공동체와 함께 묵주기도 모임을 가져보세요. 함께 환희의 신비를 묵상하며 각자가 받은 깨달음을 나누면, 더 풍성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어떤 이는 마리아의 믿음을, 다른 이는 목자들의 단순함을, 또 다른 이는 시메온의 희망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나눔은 서로를 격려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드릴 때 환희의 신비를 연극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마리아와 천사 역할 놀이를 통해 복음 내용을 쉽게 기억하고, 어른들은 순수한 시선에서 오는 통찰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이 함께 드리는 묵주기도를 강조하며,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 성장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환희의 신비를 자주 바치며, 우리도 성가정처럼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로 성숙해갈 것입니다.
  5. 환희의 신비로 실천하는 신앙 덕목: 환희의 신비는 구체적인 덕행의 본보기입니다. 이를 묵상할 때 얻은 영감을 삶에 실천해 보십시오.
    • 1) 겸손과 순명: 수태고지의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순종하기 – 매일 아침 묵주 1단을 드리며 그날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겠다고 봉헌해보세요.
    • 2) 사랑의 실천: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처럼 이웃을 방문하고 돕기 –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방문이나 안부 전화를 하거나, 오랫동안 못 만난 이를 찾아가 보십시오.
    • 3) 가난의 영성: 예수님 탄생의 가난함을 본받아 소박하게 살기 –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절약한 부분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며 예수님의 가난을 기억합시다.
    • 4) 봉헌과 희생: 성전 봉헌의 신비를 본받아 내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드리기 – 시간이나 재능을 교회 봉사나 자선 활동에 봉헌해보세요.
    • 5) 하느님 우선: 성전에서의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며 내 삶의 우선순위 재정립 – 하루 중 먼저 기도 시간을 확보하고, 주일 미사를 최우선하며, 어떤 결정 앞에서 “이것이 하느님 뜻에 합당한가?”를 먼저 묻는 습관을 들입니다.
  6. 성모님과 동행하기: 끝으로, 묵주기도는 본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생애를 관상하는 기도입니다. 환희의 신비를 묵상할 때 특히 성모님의 모성적 시선으로 그 장면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세요. “거룩하신 마리아, 하느님의 성모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간구를 바칠 때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묵상하는 신비의 의미를 더 잘 깨닫도록 은총을 얻어주실 것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묵주기도를 통해 마리아는 우리를 예수님과 더욱 깊이 일치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환희의 신비를 꾸준히 묵상하면서 성모님 손을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마치 나자렛의 예수님이 자라나신 것처럼 서서히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환희의 신비는 “그리스도교 기쁨의 가장 깊은 의미”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신비를 반복해서 묵상할수록, 우리는 강생의 현실성과 구원의 기쁨을 더욱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묵상함으로써 순수하고 단순한 신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또는 월·토요일의 전통에 따라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를 바칠 때, 마음을 다해 그 장면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기쁨의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신비들이 지닌 은총이 여러분의 신앙 여정 안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뻐하여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라는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도 들려올 때, 우리도 아멘으로 응답하며 삶으로 복음을 낳아 세상에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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