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신비

빛의 신비를 대표하는 장면, 예수님이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모습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 9,5)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잘 보여주듯, ‘빛의 신비’는 예수님 공생활의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빛의 신비를 묵상하는 주제입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교서「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전통적인 15단 묵주기도에 이 5단의 ‘빛의 신비’를 추가하여 묵상하도록 권고하였고, 특별히 목요일에 바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제 각 신비별로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와 기도를 제시하겠습니다. 이 글은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독자가 각 단계를 천천히 묵상에 잠길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제1단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 받으심

관련성경

예수님의 공생활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로 내려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6-17)이 성경 장면에서 성부와 성령께서 함께 나타나시어 세례 받는 성자를 증언하시니, 이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난 공현(公顯) 사건입니다.

교의적 배경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의 세례를 죄 없으신 어린양이 우리와 같은 죄인들의 행렬에 기꺼이 들어서신 겸손의 행동으로 이해합니다. 교리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생활은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받은 세례로 시작된다. …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내렸으며, 하늘의 목소리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언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예수님의 나타남(에피파니아)이다.”. 예수님께서 굳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신 자신을 죄인들과 하나되게 하시고, 장차 우리의 죄를 짊어지실 것을 예고한 행위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에 대해 “죄 없으신 그분이 죄인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세례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과 순명의 덕목을 극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 요르단강 물 속에 내려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죄인들 틈에 끼어 세례를 받으시는 주님의 겸손함을 느껴 보십시오.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는” 광경과 성부의 음성을 상상하며,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를 통하여 미래의 우리 세례 성사를 거룩하게 하시고 물을 성화하셨습니다. 자신의 세례 때를 떠올리면서, “나는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마음에 새겨 보십시오. 세례 때 받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봅시다. 또한 매일의 삶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순명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지 점검해보십시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주 예수님, 죄인인 저희와 하나 되시려고 요르단강 물에 내려가신 주님의 겸손을 찬미합니다. 제 교만을 씻어 주시고, 세례 때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령을 제 안에 가득 부어주시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늘 새롭게 거듭나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암브로시오는 “예수께서 세례의 물에 들어가심으로써 물이 성령의 강복을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신비를 묵상하며 “그리스도께서 요르단에서 내려오실 때,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드러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세례자 성 요한의 겸손한 태도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그는 예수님께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마태 3,14)라고 겸허히 말했지요.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제2단 예수님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

예수님이 항아리 속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순간, 성모 마리아와 하인들이 함께하는 장면

관련성경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표징(miracle)을 행하시어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이 사건은 요한 복음 2장에 전해지는데, 혼인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지자 성모님께서 이를 예수님께 알려드립니다. 예수님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어머니의 청을 들어 물독 여섯 개를 최고의 포도주로 채워 주십니다. 이 표징으로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어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교의적 배경

카나의 기적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첫 기적이자, 예수님이 메시아적 영광을 처음으로 나타내신 순간입니다. 교회는 이 장면을 통하여 마리아의 전구(轉求), 곧 성모님의 중보 역할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교리서에서는 “카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는 잔치집의 필요를 아들에게 청하였다. 이는 다른 잔치, 곧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가리키는 표징이다. 그 잔치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당신 신부인 교회의 청에 따라 내어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18항 참조). 마리아의 중재로 이루어진 이 기적은 훗날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을 예고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교부들은 이 물이 포도주로 바뀐 사건을 통해 혼인의 중요성과 성사의 가치를 해석했습니다. 가나의 혼인은 단순한 잔치 이상의 의미, 즉 그리스도(신랑)와 교회(신부)의 신비로운 결합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 혼인잔치의 흥겹던 분위기가 포도주가 떨어지며 당황과 난처함으로 바뀌는 장면을 그려보십시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예수님께 다가가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씀드리는 성모님의 세심한 배려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어서 성모님이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당부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이 말씀은 성모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성경상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모님처럼 예수님께 간청하고 또 예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지만, 당신의 정하신 때와 방법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아직 제 때가 아니다” 하신 예수님도 결국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셨듯이, 우리의 기도에도 가장 알맞은 때에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기다려보세요. 한편 이 기적의 현장에서 변한 포도주의 풍성함과 뛰어난 맛을 상상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바꾸실지 기대해보십시오. 우리의 일상적인 ‘물’ 같은 노력이 예수님의 은총으로 ‘포도주’ 같은 열매로 변화될 수 있음을 믿으며, 작은 일도 정성껏 수행하도록 결심해봅시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주 예수님, 저희 삶에 부족함이 있을 때 언제나 세심하게 돌봐 주시는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성모 마리아처럼 저희가 필요한 바를 주님께 용감하게 청하고, 주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신 성모님의 권고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매순간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게 하소서. 제 평범한 일상도 주님의 손을 거치면 기쁨의 포도주로 바뀔 수 있음을 믿나이다. 오늘 제게 주신 소명과 임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여, 주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에 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은 일치합니다. 성 알폰소 리구오리는 “마리아에게 전구(轉求)를 청하는 이들은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모님은 첫 기적 때처럼 지금도 당신 아드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이라며 신뢰를 당부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께 의탁할 때, 성모님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무엇이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조언해 주십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권고를 따라 순종했던 하인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의 직접적인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손을 잡고 순명할 때, 주님 기적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청원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를 두고 “우리는 이 혼인잔치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혼인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주님께서는, 미사에서 포도주를 당신의 성혈로 변화시키시지요. 그러므로 이 기적을 묵상하며 성체성사의 놀라운 신비까지도 함께 떠올리며 감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심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와 복음을 선포하시는 모습

관련성경

예수님께서 세례와 광야 성찰을 마치신 후 갈릴래아에서 공적 전파를 시작하시며 첫 말씀으로 선포하신 것이 바로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선언입니다 (마르 1,15). 이 신비는 예수님의 온 공생활에 두루 나타나는 복음 선포치유와 용서의 행적을 포괄합니다. 예수님은 곳곳을 다니시며 하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으며, 죄인을 용서하고 병자를 고쳐 주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산상 설교(마태 5-7장)에서 팔복과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하느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하신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교의적 배경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 혹은 하늘 나라)는 예수님의 복음 핵심 주제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세상에 왔고, 교회 안에서 신비로이 현존하며, 세상 종말에 완성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기적과 치유는 하느님 나라가 임했음을 증명하는 표징이라고 설명하지요. 예수님의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외침은 우리 내면의 회심(metanoia)을 요구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 나라는 프로그램이나 장소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이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죄인들이 용서받고 병든 이들이 치유되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으니,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공생활 3년 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도와 제자들을 파견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교회는 이 사명을 이어받아 오늘까지도 전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 갈릴래아의 길거리나 호숫가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군중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길, 비유를 통해 진리를 전하시는 음성을 마음으로 들어봅시다. 특별히 산상 설교 중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라던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마태 5,14) 등의 말씀을 천천히 되새겨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에게 직접접 하시는 말씀으로 여기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을 음미해 보세요. 또한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중풍병자나 눈먼 이를 고쳐주시는 장면을 상상하며, 내가 치유받아야 할 영역은 어디인지 식별해봅시다. 혹은 예수님이 죄인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마르 2,5)고 선포하시는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나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내어놓고 용서를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죄인, 세리, 창녀들과 식탁을 함께 하시며 그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변의 누구를 편견 없이 사랑하고 복음의 기쁨을 나눌지 떠올려봅시다. 이 묵상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복음 선포 사명에 동참하도록 열정을 불러일으켜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침처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삶을 살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주 예수님, 복음 선포의 여정 곳곳에서 저희를 당신 나라로 부르시니 감사드립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주님의 음성이 오늘 저에게도 울려퍼지오니, 제 굳은 마음을 회개의 은총으로 누그러뜨려 주소서.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당신 나라의 일꾼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복음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살아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특별히 제 주변에 복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과 진리로 증언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의 나라가 제 삶과 온 세상에 오시옵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과 모범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전하며 “항상 복음을 선포하라.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라.”는 유명한 조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회개와 복음적 가난의 증거였지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말로만 아니라 삶의 증거로 이뤄져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성 바오로는 회심 후 온 세상에 선교 여행을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위대한 모범입니다. 그는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코린 9,16)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열정으로 우리도 복음을 살아내고 전한다면,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어거스티노는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하기 전까지는 편안함을 얻지 못하리이다”라고 고백했는데, 이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간 영혼의 갈망을 잘 보여줍니다. 복음의 생활화끊임없는 회개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게 준비시켜 주는 길입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사와 말씀을 나누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고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전할 때 넘쳐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복음의 기쁨을 삶으로 증언하는 제자가 됩시다.


제4단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예수님이 광채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변모하신 장면, 놀라는 제자들

관련성경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세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사건은 공생활 중 일시적으로 예수님의 신적 영광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였다.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희어졌다.” (마태 17,2) 제자들은 영광에 싸인 주님과 더불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마태 17,5)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엎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일으키시며 일상의 현실로 데리고 내려오십니다.

교의적 배경

 거룩한 변모(Transfiguration)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하느님이심을 미리 엿보게 해 준 사건입니다. 교회는 이 변모 사건을 예수님의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위로이자, 부활의 예고로 이해합니다. 탈부케 산상의 예수님 모습은 잠시나마 그분의 하늘 영광을 보여준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중에 회상하며 “그분의 위엄을 친히 본 목격자”였다고 증언하지요 (2베드 1,16-18). 이 사건에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여, 예수님이 율법과 예언의 완성자이심을 나타냅니다. 교부들은 구름 속 성부의 음성을 예수님의 신적 신원에 대한 확인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교리서는 “예수님의 변모는 삼위일체 전체가 현현된 사건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성부의 목소리, 성자의 광채, 성령을 상징하는 빛구름이 함께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한편 제자들이 본 예수님의 영광은 앞으로 올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공의회 문헌(「가톨릭 교회 교리서」 556항)에도 “예수님의 변모는 천국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며, 우리도 그분의 부활 영광에 참여할 것을 약속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할 때, 그 빛나는 장면을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구름과 빛에 둘러싸여 눈부시게 변모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제자들과 함께 황홀경에 빠져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마태 17,4)라고 말하던 베드로의 심정을 느껴보세요. 동시에 그 영광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로 엎드린 자신의 모습도 떠올려봅니다. 이 신비는 기도 중에 잠깐 맛보는 하느님 체험의 황홀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가끔 신앙생활 중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빛을 체험할 때가 있지만, 늘 그 순간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산을 내려오셨듯 우리도 다시 일상의 삶현장으로 돌아가야 하지요. 그러나 변모의 기억은 시련의 때에 우리를 붙들어주는 힘이 됩니다. 그러니 마음 속으로 주님의 영광을 체험했던 순간들을 기억해보세요. 혹은 성체조배나 깊은 기도 중 마음의 평화와 환희를 느꼈던 적이 있다면, 그것이 작은 변모 체험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변모의 영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로 어둡고 힘든 순례길에서 희망의 빛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바라봅시다. 지금 힘겨운 일이 있다면, “눈을 들어 보니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마태 17,8)라는 구절처럼 결국 제자들 곁에 남아 계신 예수님만을 응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두려워하지 마라” (17,7)라는 부드러운 음성을 마음에 새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합시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주님, 저희에게 당신의 하늘 영광을 한 줄기 비추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며 견디게 하소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신 성부의 말씀을 따라, 제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게 하소서 (주석 성경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님, 때로는 어둡고 답답한 세상살이지만 그 안에서도 하늘의 빛을 발견하도록 제 눈을 열어 주소서. 제 영혼을 밝히시어 언젠가 뵙게 될 당신 부활의 영광을 갈망하며 오늘 하루도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지혜

 이 신비에 관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변모하신 예수님의 광채는 천국에서 의인들이 빛날 모습의 전주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성 레오 대교황은 설교에서 “예수님의 변모는 교회 전체에 퍼지는 희망의 광채”라고 하여, 우리 신자들이 결국 변모된 주님처럼 변화될 것을 강조했습니다. 현대의 영성가들도 이 장면을 즐겨 묵상했는데, 가령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 복자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며 “매번 산정에서 주님의 변모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산을 타며 하늘에 가까워질 때마다 영광의 주님을 느꼈다고 하지요. 우리 역시 일상의 작은 산 – 곧 기도의 자리에 올라 주님을 대면할 때, 마음이 환히 변모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로사리오 묵상에서 이 신비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를 믿는 이들 안에 완성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고 가르치며 희망을 북돋았습니다. 그러므로 변모의 신비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통한 영광을 약속하며, “지금은 주님과 함께 고난을 겪어도 장차 영광도 함께 받으리라”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로마 8,17 참조).


제5단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심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성체성사를 세우시는 예수님

관련성경

 예수님 공생활의 절정은 최후의 만찬에서 일어났습니다. 파스카 축제를 앞둔 저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성체성사와 성품성사(사제직)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 14,22-24 참조) 이로써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축성되었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영적 양식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이 성찬례를 거행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성사의 제정은 이튿날 있을 십자가 희생을 미리 성사적 방식으로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교의적 배경

 가톨릭 교리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으로 가르칩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는 교회 삶의 원천이며 정점이다”라고 선언했고, 교리서도 이를 인용하여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친히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제정하셨으므로, 미사 성제(聖祭)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이 현존하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교리서 1367항은 “성체성사는 갈보리의 희생과 동일한 희생이며, 단지 방법만 다를 뿐”이라고 설명하지요. 또한 성체성사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제사로서, 예수님이 친히 당신 몸과 피로 맺으신 언약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성인들은 성체성사의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를 가르쳐 왔는데, 성 아우구스티노는 “눈에 보이는 것은 빵과 포도주이지만, 믿음으로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깨달으라”고 말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성체성사를 “모든 성사의 완성”이라고 부르며, 그 신비를 기리는 「성체 찬미」(Pange Lingua)와 같은 주옥같은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당신 자신을 실제로 현존시키시고, 우리와 깊이 결합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는 매일 전세계 곳곳에서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음을 기념”합니다 (1코린 11,26). 또한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띠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요한 6,54-58 참조).

묵상을 위한 안내

 이 신비를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다락방에서 빵을 들고 감격스럽게 바라보시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삶의 마지막 선물로 당신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시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제자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오늘 미사 때 제대에서 같은 말씀이 울려퍼지고,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그 거룩한 순간을 마음에 떠올리십시오. 성체 성혈을 받아 모시는 순간의 감격과 감사도 되새겨 봅니다. 혹시 성체 앞에서의 기도 경험이 있다면, 성체조배 때 마음의 평화와 뜨거움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세요. 성체성사는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마련하신 사랑의 방식임을 묵상합시다. 주님은 나약한 우리가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도록 친히 양식이 되셨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 앞에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요? 주님께 더욱 자주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고, 가능한 자주 영성체를 함으로써 주님과 일치를 이루겠다고 다짐해보세요. 또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며,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십자가 상향 재현되는 그 희생을 깊이 경배합시다.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주 예수님, 마지막 만찬에서 저희를 위해 당신 몸과 피를 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빵은 내 몸, 이 잔은 내 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나이다. 주님, 성체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 저마다 그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영성체할 때마다 제 안에 오시는 예수님, 제 영혼을 정결하고 겸손하게 준비하여 모시게 하소서. 십자가의 그 희생을 잊지 않고 매 미사 때 참회와 감사의 마음을 드리게 하소서. “저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하신 명령에 따라, 교회의 전례 안에서 저도 온 삶을 주님께 봉헌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과 모범

 성체성사에 대한 성인들의 사랑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만약 우리가 성체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기쁨으로 죽어버리고 말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성 파드레 피오 신부는 “세상이 태양 없이도 존속할 수 있을지 모르나, 미사 없이는 결코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매일 봉헌되는 미사가 온 세상에 생명을 준다는 신앙 고백이지요. 성모 데레사 성녀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미사성제 안에서 예수님을 모시는 시간”이라며 하루에 여러 번 미사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한편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성체조배 중에 종종 황홀경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현존을 체험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의 한국 순교성인들 역시 성체성사를 목숨 바쳐 지켰습니다. 서울의 순교자들은 박해 속에서도 몰래 미사를 거행하며 성체를 모셨고, 어떤 이는 감옥에서 밀떡으로 가짜 성체성사를 흉내내며 성체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선열들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성체에 대한 흠숭과 신심을 더욱 키워 나가야겠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또한 서로도 형제자매로 깊이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성체의 신비를 묵상할 때마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세상에 봉사하는 삶을 다짐합시다.

묵상을 위한 실천 가이드

‘빛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신앙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실천적 가이드를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 개인 기도 방법: 매주 목요일이나 원하는 날을 정해 ‘빛의 신비’ 다섯 단을 묵주기도로 바치십시오. 각 단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성경 구절을 먼저 읽고(예: 마태 3,13-17; 요한 2,1-11 등) 잠시 묵상한 뒤 묵주기도를 바치면, 성경 말씀이 마음에 더욱 새겨집니다. 또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식으로 각 사건을 천천히 묵상해 보세요. 예를 들어 첫째 신비를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 내려가신다… 하늘이 열린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그 장면 안에 자신을 놓아 보고, 주님께 자유롭게 기도문을 바친 뒤 침묵 속에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 성경 읽기 추천: ‘빛의 신비’와 관련된 복음서 본문들을 찾아 꼼꼼히 읽어보십시오. 마태오 복음 3장, 요한 2장, 마르코 1장과 9장, 루카 22장 등이 해당됩니다. 성경 주석이나 교부들의 해설을 함께 참고하면 이해가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카나 혼인잔치 본문을 읽은 후 교부 성 치릴로의 해석을 찾아보거나, 산상설교 관련 교리서를 읽어보십시오.
  • 전례 참여와 공동체 묵상: 가능하면 평일 미사 중 목요일을 선택하여 미사 전에 묵주기도 ‘빛의 신비’를 바쳐보세요. 성당 공동체에서 목요일을 ‘빛의 신비의 날’로 삼아 함께 묵상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성체조배 시간에 다섯째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레지오 마리애나 묵주기도회 등 단체 활동에서도 매주 한 단씩 체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 일상 속 실천: 각 신비가 지닌 덕목을 생활화하는 작은 목표를 세워보세요. 예를 들어:
    • 첫째 신비(겸손): 매일 아침 묵주 1단을 드리며 겸손 실천
    • 둘째 신비(순종과 나눔): 주변의 어려운 이를 살피고 도움 주기
    • 셋째 신비(복음 암송/회개): 복음 구절 암송 또는 십자가의 길 바치기
    • 넷째 신비(희망): 고난 중에도 감사 표현하기
    • 다섯째 신비(영성체 감사): 미사 후 10분 이상 감사기도 드리기

‘빛의 신비’를 통한 신앙 성장

‘빛의 신비’는 우리 신앙 여정의 성장 방향을 밝히 비춰 줍니다. 이 신비들을 꾸준히 묵상하면 다음과 같은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예수님의 세례, 혼인잔치, 복음 선포, 변모, 성체성사를 묵상하며 언제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신앙으로 자랍니다(에페 4,13 참조).
  • 삼위일체적 체험: 세례와 변모를 통해 성부·성자·성령의 신비를 마음에 새기고, 삼위일체 친교에 참여하는 삶으로 변모합니다.
  • 성모님과 함께 걷는 여정: 묵주기도를 통해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며 겸손과 신뢰를 배우게 됩니다.
  • 말씀과 성사의 생활화: 복음 선포와 성체 성사를 묵상하며 말씀 읽기, 미사 참여, 성체조배를 일상에 실천하게 됩니다.
  • 사명 의식의 함양: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음을 자각하고, 묵상으로 받은 은총을 사랑과 희생으로 삶에 실천합니다(마태 5,13-16 참조).

마지막으로, 묵주알을 손으로 굴리며 성모송을 바칠 때 마음이 고요해지고 성령께서 활동하십니다. ‘빛의 신비’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처럼 펼쳐지며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묵상이 산만할 때에도 꾸준히 이어가면, 성령의 은총이 열매 맺게 해주십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이사 60,1)라는 말씀처럼, 묵상 중 받은 빛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힘차게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빛께서 언제나 우리 발걸음을 비춰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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