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안에서의 성수
성수 축복 예식
성수는 개인의 임의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식(전례) 안에서 축복됩니다. 현행 라틴 전례에서는 「축복식(De Benedictionibus, 통칭 Book of Blessings)」과, 특정 용도에 대한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 양식들이 성수 축복을 규정합니다. 이 기도들은 성수에 대한 교회의 신학을 기도의 형태로 응축해 전하는 살아 있는 교리 교육입니다.¹ ²
성수 축복문을 보면, 먼저 성삼위 하느님을 부르는 호칭 기도가 있고, 이어 기념(anamnesis)—창조 때의 물(창 1,2), 노아의 홍수, 홍해의 통과, 주님의 요르단 세례—를 회상하여, 이 물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구원 역사와 연결된 표징임을 선포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청원(epiclesis)이 뒤따라, “이 물을 쓰는 이들이 영혼과 육신의 유익을 얻고 악에서 지켜 주소서”와 같은 간구가 드려집니다.¹ ² 이 전개는 “우리가 기도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믿는 바(lex orandi, lex credendi)”라는 원리를 잘 드러냅니다.³
전통적으로 소금을 축복하여 물에 섞는 관습이 있어 왔습니다. 부패 방지·정화·지혜의 상징 때문이며, 고대부터 전해진 합법적 전례 전통입니다. 다만 현행 축복식에서 소금 첨가는 선택 사항이며 지역 관습에 따라 생략할 수 있습니다.²(주: 의무가 아닙니다.)
성수를 축복할 직무는 기본적으로 주교·사제에게 속합니다(“사제는 교회의 이름으로 대부분의 축복을 베푼다”).⁴ 부제는 교회법과 전례서가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특정 축복을 베풀 수 있습니다.⁴ ²(주: 지역판 축복식에 따라 부제 주례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점은, 성수 축복이 사적 신심이 아니라 교회의 이름과 권위로 집전되는 공적 행위라는 점입니다.
만약 성수가 단지 “기능적”으로만 필요했다면 “이 물을 축복하나이다”라는 짧은 말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구원 역사 전체를 소환하는 장엄한 예식을 보존해 왔습니다. 신자들은 이 기도에 참여함으로써 성수가 무엇이며 왜 거룩한지를 체험적으로 배움니다.¹ ³
미사 전례에서의 성수
주일 미사의 시작에서, 참회 예식을 대신해 성수 예식(뿌림 예식)을 할 수 있습니다(“주일, 특히 부활 시기에”).⁵ 이때 사제(또는 허용 시 부제)가 성수를 뿌리며 세례의 기억을 새롭게 합니다. 이 예식의 신학적 중심은 회개 고백(참회 예식)과 구별되어, 세례 은총의 기쁨과 정체성의 갱신에 비중을 둡니다. 소죄의 용서를 자동으로 보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통회와 신앙 안에서 성사에 합당히 참여하도록 준비시키는 전례적 표징입니다.⁶
노래는 전례 시기와 지역 관습에 따라 다양합니다. 전통적으로 연중·사순에는 “Asperges me”(시편 51, 정화의 간구), 부활 시기에는 “Vidi aquam”(에제 47의 생명수 환시와 부활의 기쁨)을 노래해 왔습니다. 현행 미사서도 세례 기억을 드러내는 적절한 성가를 권장합니다.⁵(주: 전통 성가를 사용할 수도 있고, 현지 전례지침에 따른 성가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미사 도입부의 성수 예식은, 성찬의 전례 전체를 세례성사의 시야 안에 놓고 이해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과 성찬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것은 세례로 교회에 접붙여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인의 수치”가 아니라 “세례받은 자의 존엄”으로 미사를 시작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주일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길을 열어 주려는 교회의 사목적 배려입니다.⁵ ³
성사와 다른 예식에서의 성수
성수는 미사 외에도 신자의 삶을 관통하는 여러 성사·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세례성사: 세례 예식에는 물의 축복이 포함됩니다. 이때의 물은 축복된 물(준성사)로 준비되지만, 세례의 형식과 결합하여 성사의 질료로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실질적으로 참여합니다.⁷(주: 물 자체가 “다른 본질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사의 표징 행위 안에서 구원 사건의 도구가 됩니다.)
- 장례 예식: 고별식에서의 성수 뿌림은 고인의 세례를 기억·선포합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이미 참여했음을 상기시키며, 최종 이별의 순간에도 세례의 희망을 고백합니다.⁸
- 축복식(사람·장소·사물): 새 집·새 차·여정의 안전, 성물(묵주·성상·메달 등)의 축복에 성수가 자주 동반됩니다. 이는 대상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세속적 용도에서 구별하며, 악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를 간구하는 표징입니다.² ⁴
이처럼 성수는 세례대–가정–무덤까지 인생의 문턱마다 우리와 함께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신자의 전 생애를 성화의 흐름으로 엮으려는 교회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성수는 우리의 여정을 관통하는 “준성사적 실(실타래)”과 같아, 한 분 하느님의 은총이 삶의 모든 국면에 스며들도록 돕습니다.¹ ²
성당과 성수대
대부분의 성당 입구에는 성수대(stoup/aspersorium)가 있습니다. 이 위치는 임의가 아니라, 세속과 성전(성소)을 가르는 문턱을 표징합니다. 신자는 성당에 들어서며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고, 세례의 기억을 새롭게 합니다.⁹
이 단순해 보이는 행위는 사실상 각 신자가 거행하는 “작은 입당 예식”입니다. 바깥의 분심·근심·죄의 먼지를 털고, 기도의 자리로 마음을 전환하는 의식적 행위이지요. 물의 감각과 성호의 몸짓이 결합되어 마음을 각성시키고, “나는 하느님의 집에 들어선다 – 세례의 정체성을 새롭게 한다 – 예배를 위해 마음을 정돈한다”는 내적 결단을 돕습니다. 이렇게 성수대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참된 예배로의 내적 전환을 촉진하는 지혜로운 전례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⁹ ³
¹ De Benedictionibus (현행 「축복식」) 총지침 및 성수 관련 장: 성수 축복의 구조(호칭–기념–성령청원–간구).
² Rituale Romanum 및 지역판 축복서: 성수 축복의 다양한 양식과(선택적) 소금 사용—현행 전례에서는 의무가 아님.
³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7, 33, 48·59–61: 전례의 교육적 성격, 성사·준성사 관계, lex orandi–lex credendi.
⁴ 「교회법전」(CIC) 1169 §2–§3: 사제는 대부분의 축복을 베풀 수 있고, 부제는 법이 허용하는 축복을 베풀 수 있음(성수 축복의 부제 주례 여부는 전례서 규정에 따름).
⁵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GIRM) 51 및 관련 규정: 주일, 특히 부활 시기에 미사 시작에서 성수 뿌림 예식으로 참회 예식을 대체 가능—세례 기억 강조.
⁶ CCC 1670, 1430–1432: 준성사의 효력은 교회의 기도와 신자의 준비에 달려 있으며, 성사 참여를 준비시킴(자동적 효험 아님).
⁷ 「세례 예식서」: 물 축복과 세례 집전—축복된 물은 성사의 표징 행위 안에서 질료로 사용되어 구원 행위에 참여.
⁸ 「장례 예식서」: 고별식에서의 성수 뿌림—세례의 기억과 부활 희망의 선포.
⁹ 교회 관습서·전례 지침: 성당 입구 성수대의 신학—세례의 기억과 예배로의 전환을 돕는 표징(지역 지침에 따라 세부 운영 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