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聖水)의 신학적 기초

준성사(準聖事)로서의 성수

가톨릭교회의 성화(聖化) 활동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일곱 성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사를 닮은 거룩한 표징들을 제정하여, 교회의 전구를 통해 영적 유익을 청하고 표시하도록 했는데, 이를 준성사라 부릅니다.¹ 성수(聖水), 축복, 구마, 사람이나 물건의 축성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준성사는 교회가 제정한 것으로, 신자들이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더 잘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성화하도록 돕습니다.¹ ⁴

성사의 효력과 준성사의 효력은 발현 방식이 다릅니다. 일곱 성사는 유효하게 거행되기만 하면 그 행위 자체로(ex opere operato) 은총을 베풉니다.² 반면 성수를 포함한 준성사교회의 기도와 신자의 준비(ex opere operantis Ecclesiae)를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³ 곧, 물 자체가 마치 기계적·자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축복 기도와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성사의 본래 목적은 성사의 은총을 직접 수여하는 데 있지 않고, 신자들이 성사의 은총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일상을 성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¹ ³

✔️ 정리

  • 성사: 그리스도 제정 / ex opere operato / 은총을 직접 수여²
  • 준성사: 교회 제정 / ex opere operantis Ecclesiae / 은총을 받도록 준비시키는 표징¹ ³

성사(Sacrament)와 준성사(Sacramental)의 비교

기준성사준성사
설정(기관)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²교회가 제정¹
수(Number)7가지²다양, 수의 제한 없음¹
효력의 근원Ex opere operato (거행 그 자체로 효력)²Ex opere operantis Ecclesiae (교회의 기도·신자의 준비)³
수여/도움 주는 은총성화은총을 직접 베풂²은총을 받도록 준비시키고 성화에 이바지함¹ ³
주된 목적은총 수여, 파스카 신비와 결합²삶을 성화, 성사 수령에의 준비¹ ⁴

성경에 나타난 물의 구원사적 의미

교회가 물을 성화하여 성수로 사용하는 것은 임의적 관습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물의 구원사적 상징에 깊이 뿌리내립니다. 교회의 성수 축복은 단순한 물의 강복이 아니라, 창조–심판–구원의 역사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현재화하는 장엄한 기념(anamnesis) 행위입니다.⁵

  • 창조: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계셨다(창 1,2). 물은 생명의 원초적 토양을 암시합니다.
  • 심판과 정화: 홍수는 죄를 심판하면서도 노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정화의 물이었습니다(창 7–9장).
  • 해방과 통과: 홍해의 물은 이스라엘에게 해방의 길, 파라오에게는 심판이었습니다(탈출 14장). 이 사건은 세례의 예표로 읽힙니다.⁶

신약에서 이러한 예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 주님의 세례: 요르단에서의 세례(마태 3,13–17)는 물의 구원사적 의미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모든 물이 본질적으로 성수로 변했다”가 아니라, 교회의 기도 안에서 물이 성별되어 은총의 표징으로 쓰일 수 있음을 밝혀 줍니다.³ ⁷
  • 생명의 물: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로 계시하십니다(요한 4,10–14).
  •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요한 19,34)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특히 세례와 성체의 신비상징적으로 드러난다고 이해됩니다.⁸

따라서 성수를 축복할 때 교회가 창조·홍수·홍해를 소환하는 것은, 구원의 파노라마를 그 물 안에 집약하려는 전례적 지혜 때문입니다. 성수는 단순한 H₂O가 아니라, 교회의 기도에 결합된 거룩한 표징으로서 신자를 그 구원 서사에 연결합니다.¹ ⁵


성수의 영적 효력과 은총

성수의 효력은 마술적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교회의 기도신자의 준비(통회·신앙)만나 맺는 열매입니다.³ ⁴ 균형을 위해 두 극단—① 단순한 심리적 상징으로 축소하거나 ② 자동 효험을 기대하는 미신—을 모두 피해야 합니다.³

1) 소죄(venial sin)의 용서에 대한 도움

성수 사용은 고해성사를 대체하지 않지만,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통회와 결합될 때 소죄 용서를 청하도록 돕는 준성사의 전통적 용례입니다.³ ⁹ 교회의 가르침은 통회·자선·전례의 참회 예식이 소죄 용서에 유익함을 가르치며, 준성사는 그에 준비를 제공합니다.⁹ ¹⁰

2)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를 간구

성수 축복문에는 구마적 간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수가 하느님의 보호를 청하는 표징임을 드러냅니다. 다만 자동적 방어막이 아니라, 신앙·회개·성사 생활과 결합될 때 올바른 열매를 맺습니다.³ ⁵ ¹¹

3) 세례의 기념

성당 출입 시 성수대로 성호를 긋는 행위는 자신의 세례 정체성을 새롭게 기억하고, 교회와 파스카 신비에 다시 결합하려는 의식적 실천입니다.⁵ ¹²

4) 현세의 필요에 대한 청원

교회는 성수를 통해 영혼의 건강뿐 아니라 육신의 건강·안전현세적 필요하느님의 섭리에 맡겨 청원합니다. 이는 기계적 보장이 아니라 신뢰의 기도입니다.³ ⁵

✔️ 핵심 원리(가톨릭의 both/and)

  • 성수는 은총의 원인이 아니라 은총에 열어 놓는 표징입니다.¹ ³
  • 객관적(교회의 축복)과 주관적(신앙·통회)의 상호작용 안에서 열매가 맺힙니다.³ ⁹

성수는 “생명의 상징, 은총의 표지”로서, 교회의 기도 안에서 우리의 일상성화로 준비시키는 거룩한 표징입니다. 가정과 일터, 여정과 만남 속에 성수를 바르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세례의 기억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그리스도의 파스카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됩니다.¹ ⁵


¹ 《가톨릭교회 교리서(CCC)》 1667–1668: 준성사 정의·목적(성사를 모방하는 거룩한 표징, 교회의 전구를 통해 영적 효과를 얻고 또 표시).
² CCC 1127–1128: 성사의 효력—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 ex opere operato, 유효 거행 시 은총의 객관적 수여. 또한 1210–1211: 일곱 성사의 총설.
³ CCC 1670: 준성사의 효력—ex opere operantis Ecclesiae, 신자의 처지에 따라 성화를 준비시키고 삶의 다양한 상황을 성화.
⁴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60–61: 준성사는 성사의 모방 표징으로서, 성사에로 이끄는 성화·교육적 역할을 함.
⁵ 『로마 예식서』(현행 「축복식」 De Benedictionibus / 「성수 축복」 관련 본문): 창조·홍수·홍해 등 구원사 회상과 간구를 통해 물의 축복을 거행.
⁶ 1코린 10,1–2; 로마 6,3–4: 홍해와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의 전형(파스카 통과·옛사람의 죽음과 새 생명).
⁷ 마태 3,13–17: 주님의 세례—물의 성화 선언이 아니라, 구원사에서 물의 의미를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 (동·서방 전례의 ‘대축수’ 전통은 상징을 선명히 함)
⁸ 요한 19,34 및 교부 전통(예: 아우구스티노, 요한 크리소스토모): 옆구리의 피와 물—교회와 성사(특히 세례·성체)의 상징적 원천.
⁹ 토마스 아퀴나스, Summa Theologiae III, q.87 a.3; 또한 CCC 1458, 1863: 소죄는 통회·사랑의 행위·전례의 참회 예식 등으로 용서됨. 준성사는 그 수용을 준비.
¹⁰ 미사 ‘참회 예식’(Ordinary Form) 규범: 합당한 통회로 소죄 용서에 유익. 준성사로서의 성수 사용은 이 흐름을 돕는 실천.
¹¹ 『구마 예식』(1998) 및 「축복식」 일반 서문: 축복·구마적 간구는 간청적 성격으로, 신앙과 성사 생활 속에서 결실.
¹² 「세례 갱신」 전례 및 성수 사용 관습: 성호경·성수 사용은 세례 기억을 환기하고 파스카 신비에 결합시키는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