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단 성령 강림

📖 관련 성경 구절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예수님의 승천 후 사도들과 성모 마리아가 다락방에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갈라지면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말하게 해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2,2-4 참조) 이처럼 성령 강림으로 사도들은 능력을 받아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 날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사도 2,41),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 교의적 배경

성령 강림 대축일은 흔히 교회의 탄생일로 불립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아들이 수행한 일이 완성되자, 성령께서 오순절에 파견되시어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신다”고 가르치며, 바로 이 성령의 힘으로 복음 선포의 시대가 열렸음을 밝힙니다. 성령은 강림하신 이후 언제나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를 진리 안에 유지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교부들은 “교회 안에 계신 성령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살아 있게 하듯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고 비유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성령은 교회의 영혼”). 또한 성령은 신자 각자의 마음에 내주하시어 (1코린 3,16) 우리의 신앙을 북돋우고 성화를 이끄십니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지혜, 통찰, 의견, 굳셈, 지식, 경건, 주님을 경외함)는 우리의 영혼을 성화시키는 선물이요, 성령의 열두 가지 열매(갈라 5,22-23)는 성령과 협력하여 맺게 되는 덕행의 열매입니다. 성령 없이는 누구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고 (1코린 12,3), 성령 없이는 교회의 성사와 복음 선포가 효력을 낼 수 없습니다. 강생부터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적 순간에 성령께서 함께하셨듯,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와 우리 각자의 삶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인호”를 받아 특별한 성령의 은총을 부여받았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던 마리아와 사도들의 무리에 우리 자신을 합류시켜 봅시다. “한 곳에 함께 모여 있던” (사도 2,1) 그들 가운데에 앉아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을 기다리는 심정을 느껴보십시오. 성모님은 약속된 성령을 믿으며 묵묵히 제자들을 이끌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 믿음과 인내를 본받아, 우리도 성령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의 혀”와 같은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을 묵상하십시오. 오순절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내 영혼에도 닿아 활활 타오른다고 믿으며, 내 안의 두려움과 나약함, 죄의 어둠을 태워 없애 달라고 청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냉담했던 가슴을 태워 사랑으로 뜨겁게 하시고 (루카 24,32에 나오는 엠마오 제자들의 마음처럼), 굳었던 의지를 부드럽게 변화시키십니다. 또한 다양한 언어로 복음을 말하게 하신 것처럼, 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언할 “언어”를 성령께서 주시길 청합니다. 그것은 실제 설교나 선교일 수도 있고, 이웃에게 전하는 친절과 용서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시며 생명이시기에, 숨을 들이마시듯 성령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호흡합시다. 조용히 “오소서, 성령님”을 반복하며 기도하거나, 성령 찬가인 “와서 우리에게 임하소서”의 가사를 마음속으로 되새겨도 좋습니다. 성령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 내 안에 새로운 용기와 기쁨, 평화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껴보십시오.

🙏 묵상을 돕는 기도

성령님, 오소서! 저희 마음을 당신 사랑의 불로 덥혀 주소서. 차가운 마음을 녹여 주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 두려워 숨죽여 지내는 저희에게 용기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고, 무기력한 영혼에 새로운 활력을 주소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 저희에게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고 옳은 길을 택할 통찰을 주소서. 거룩함의 영이신 성령님, 저희를 정화하시고 성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성령의 열매가 제 삶에 맺혀 주님의 향기를 전하게 하시며, 언제나 저를 도우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령에 관한 성인들의 고백은 매우 풍부합니다. 아르스의 성인인 성 요한 비안네는 “성령께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이끌듯 우리를 이끌어주신다. 그러니 매일 아침 ‘오소서, 성령님! 제가 무엇이며 주님께서 누구신지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실제로 성령을 삶의 스승으로 모셨던 성인들은 매 순간 성령께 도움을 청하며 살았습니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성령을 “잊혀진 분”이라고 부르며, 신자들이 성령과 친밀해질 것을 강조했습니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자신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커다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요. 또한 성 바실리오와 성 대 그레고리오같은 교부들은 성령을 “영혼의 빛”에 비유하며, 성령 없이는 한 순간도 올바로 살아갈 수 없음을 가르쳤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간 현대의 성인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복자 오스카 알누포(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불의에 맞서 싸우다 순교하였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옥중에서 성령께 의탁하며 동료들을 격려했습니다. 교황 성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며 “우리 시대에 새로운 오순절을 내려주소서”라고 간구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교회가 드리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 자신을 내맡긴 성인들의 삶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성령에 충만히 순응할 때, 나약함이 용기로, 우울이 기쁨으로 변하며, 매일의 일상이 은총의 드라마로 탈바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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