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 성모님의 방문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관련 성경
천사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곧바로 유다 산악 지방으로 길을 떠나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방문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고 외칩니다. 마리아의 인사 소리에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세례자 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오시다니!”라며 감격하지요. 이어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위대한 기도인 “마니피캇”(Magnificat, 루카 1,46-55)을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내 마음이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이 노래 안에서 마리아의 겸손과 하느님의 자비가 선포되고, 가난한 이들과 겸손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는 하느님의 정의가 찬양됩니다.
🕊 교의적 배경
이 신비는 성령의 활약과 성모 마리아의 중개를 잘 보여줍니다.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은 마리아가 가진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는 마리아가 살아있는 ‘언약의 궤’로서, 하느님의 임재를 품고 엘리사벳의 가정을 축복했음을 연상시킵니다. 구약에서 다윗 왕이 언약의 궤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내게 주님의 궤가 오다니!”(2사무엘 6,9) 하며 기뻐한 것처럼, 엘리사벳도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오시다니!”라고 환호합니다.
교회는 여기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상(母常)으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모범적 방문을 발견합니다. 또한 엘리사벳의 아기를 성령께서 뛰놀게 하신 것은, 세례자 요한이 모태에서부터 성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예수님의 도래가 이미 태중의 생명에게까지 기쁨을 준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처음부터 잉태된 생명 안에서 기뻐 춤추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은 교회의 기도 속에 살아 있습니다. 교회는 매일 저녁기도 때 이 찬가를 바치며, 가난한 이들을 높이시고 부유한 자를 낮추시는 하느님의 구원 역전을 선포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Marialis Cultus에서 “마니피캇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프로그램”이라 부르며, 모든 시대에 신앙인들이 이 노래로 복음을 삶에 적용해 왔다고 가르칩니다.
🔍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마리아의 발걸음을 떠올려 봅시다. 천사의 발현 직후, 마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기쁨에 설레어 서둘러 갔다”고 해설합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신 마리아는 그 기쁨을 이웃과 즉시 나눈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총과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데 얼마나 열심인가?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친교 속에 임하시는 성령의 기쁨을 보여줍니다. 두 어머니와 두 아기의 만남 한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지요. 우리의 신앙 생활도 홀로가 아니라 이렇게 공동체와 이웃 안에서 서로의 믿음을 북돋으며 성장함을 묵상해봅시다.
또한 마리아의 마니피캇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해 보세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셨다” 는 기도 속에 드러난 하느님의 가치관을 묵상하며, 내가 실천해야 할 겸손과 나눔의 덕을 생각해봅니다.
🙏 묵상을 돕는 기도
찬미받으소서, 주 하느님! 당신께서 베푸신 은총을 나눌 때 기쁨이 배가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성모님처럼 이웃에게 서둘러 달려가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성령의 기쁨으로 서로를 채워 주소서.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찬양하며, 제 삶으로 마니피캇의 찬미를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암브로시오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녀는 의심 없이 믿었고,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유다 산골로 향했습니다. 성령의 은총은 더딤이 없고, 사랑의 축복은 지체되지 않습니다”.
또 암브로시오 성인은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에 대해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었고, 요한은 은총의 실재를 느꼈다. 여인은 여인의 방문을 느꼈지만, 아이는 주님의 현존을 느껴 뛰놀았다”고 말합니다.
(해설: 이 말씀은 마리아의 방문이 단순한 친척 간 만남을 넘어, 예수의 현존을 전하는 복음적 방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방문할 때 주님의 사랑과 현존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면, 그 만남은 거룩한 친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