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

📖 관련 성경 구절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요한 19,17)

예수님께서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향해 가신 장면입니다. 도중에 로마 군사들은 시골에서 오던 시몬이라는 사람을 붙들어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루카 23,26). 그럼에도 결국 골고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온 힘을 다해 그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하셨습니다.

🕊 교의적 배경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희생 제물의 행렬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그가 우리의 고통을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고 예언했고(이사 53,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타로 나아가심으로써 이를 이루십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두 명의 죄인과 함께 끌려갔다고 전하며(루카 23,32), 이로써 “그분께서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지셨다”는 이사야 53장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밝힙니다.

교의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은 구원의 경륜 안에서 새로운 출애굽과 같습니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의 어린양과 함께 홍해를 건넜듯이, 이제 인류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메고 가는 십자가를 따라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예수님은 강생을 통하여 모든 인간과 자신을 어느 모로 연결하셨으며, 모든 사람이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이 곧 우리가 각자 지는 십자가 길과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여러 차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마태 16,24).

교리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적 희생에 첫 열매들인 우리를 참여시키길 원하신다”고 하며(CCC 618 참조),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았음을 명시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단순히 그분 홀로 걸으신 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앞장서신 구원의 행렬이며, 동시에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는 제자의 도전장입니다.

신앙의 모범으로서 이 길에 가장 충실히 동행한 이는 성모 마리아시며, 전통적으로 교회는 십자가의 길 네 번째 처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눈맞춤을 기억합니다. 마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받았고, 그리하여 수난 신비에 가장 깊이 참여한 분으로 공경받습니다.

🔍 깊이 있는 묵상을 위한 안내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크게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묵상합니다. 이미 극심한 채찍질로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크고 거친 나무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일은 인간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세 번 넘어지셨다고 하지요. 그때마다 흙바닥에 쓰러진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에 이마에는 가시관이 박혀 있고 어깨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얹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힘을 내어 그 십자가를 붙잡고 일어서십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큰 사랑으로 십자가를 껴안고 계시는지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 배우십시오.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위해 당신도 십자가를 지고 가십시오” 하고 에스크리바 성인은 권고합니다.

마지못해 질질 끌던 십자가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거룩한 십자가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가 져야 할 십자가의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고통의 삶이지만, 동시에 가장 의미 있고 열매 맺는 삶입니다.

내 삶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가만히 떠올려 보십시오. 육체의 병고일 수 있고, 마음의 상처일 수 있으며, 돌봐야 할 가족의 어려움이나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의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신앙을 지키면서 감내해야 하는 불편과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십자가들을 외면하거나 내려놓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 지금 이 묵상 속에서 예수님께 용기를 구해 보십시오. “예수님, 제가 이 십자가를 끝까지 지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이 함께 지어 주시면 제 멍에는 편하고 제 짐은 가벼울 것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려고만 할 때에는 그것이 우리를 짓누르지만, 도리어 끌어안으면 우리를 들어올립니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십자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십자가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기도

주님, 십자가를 지고 저 앞서 가셨기에 저희도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길을 얻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크고 작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믿음과 용기를 주소서. 제 십자가가 버거워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그 무게를 나누어지셔서 끝까지 완주할 힘을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워 주시고, 오히려 사랑으로 제 십자가를 선택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 주님, 언제나 제 앞에 서서 이 길을 이끌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제 영혼의 구원과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이 길을 걷겠나이다. 아멘.

📜 성인의 말씀 및 신앙의 모범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과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곧, 사랑으로써 고통을 통하여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차원입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는 십자가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합될 때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성인은 또한 “고통을 통한 세상 구원의 최고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부터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된다”고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수가 솟는 샘에 비유했습니다.

성녀 로사 리마는 “십자가를 떠나서는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 다른 사다리가 없습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누구도 피하고 싶지 않은 고난의 사다리를 통하여 오히려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성 시몬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잠시 지는 영광을 얻었고, 그로 인해 그의 아들들까지 신앙인이 되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꺼이 짊어지는 대속적 고통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은총의 씨앗을 심습니다.

성 바오로는 “나는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다”고 고백하며(콜로 1,24), 고통의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에게 필요한 덕목은 인내와 희망”이라 하였고, 성 알폰소는 “십자가는 성인의 왕관”이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모든 성인이 걸어간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그들의 전구를 청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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