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거룩한 성흔에 대한 네 번째 묵상

가장 거룩한 성흔에 대한 네 번째 묵상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는 이러하다. 곧,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이 성 프란치스코를 완전히 하느님께로 변화시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참된 형상으로 그를 변모시킨 이후였다. 그는 알베르냐의 거룩한 산에서 성 미카엘 대천사를 기리는 40일 금식을 마친 뒤였다. 성 미카엘 축일이 지나자, 그 천사 같은 사람 성 프란치스코는 프라 레오와 함께, 그리고 한 신심 깊은 농부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그는 못 박힌 발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기에 그 농부의 나귀를 타고 있었다.

이때, 성 프란치스코가 산을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그의 성덕에 대한 소문이 온 지역에 퍼져 있었다. 이는 양치기들이 알베르냐 산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며, 하느님께서 성 프란치스코에게 어떤 큰 기적을 행하신 징표라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 백성들이 그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몰려나와 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경건한 마음과 열렬한 갈망으로 그를 만지고, 그의 손에 입 맞추기를 원하였다.

그들의 신심을 막아낼 수 없어, 비록 그는 손바닥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가장 거룩한 성흔을 더 잘 가리기 위해 그는 더 두껍게 붕대를 감고 소매로 손을 가렸으며, 사람들에게는 손가락만을 내어 입 맞추게 하였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영광을 피하고자 성흔의 신비를 감추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 거룩한 성흔의 덕으로 많은 기적들을 드러내 보이셨다. 특히, 알베르냐에서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까지 가는 여정 중에는 그러한 기적들이 드러났고, 그 이후로도 그의 생전과 영광스러운 죽음 이후에, 세상의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명백하고 분명한 기적을 통하여, 그 성흔 안에 담긴 신비롭고도 놀라운 능력, 그리고 그에게 그토록 놀랍게 성흔을 주신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이곳에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성 프란치스코가 아레초 영지의 경계에 자리한 한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아이를 품에 안고 나와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 나아왔다. 그 아이는 여덟 살이었고, 무려 네 해 동안 수종(水腫)을 앓고 있었다. 배가 너무나도 심하게 부풀어 있어 똑바로 서 있으면 자기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여인은 그 아들을 성인 앞에 눕히고, 아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성 프란치스코는 먼저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끝난 뒤 그는 그 거룩한 손을 아이의 배에 얹었다. 그러자 곧, 모든 부기가 사라졌고, 아이는 완전히 낫게 되었다. 성인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었고, 어머니는 매우 큰 기쁨으로 그를 받아 집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하느님과 성 프란치스코께 감사하며,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보러 찾아올 때마다 치유된 아들을 기꺼이 보여주었다.

같은 날, 성 프란치스코는 보르고 산 세폴크로를 지나게 되었고, 성벽에 이르기 전에 이미 도시와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맞으러 나왔다. 많은 이들이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들고 앞장서며 외쳤다.
“저기 성인이시다! 저기 성인께서 오신다!”

그에 대한 신심과 접촉하려는 열망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며 그를 애워쌌다.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린 채 관상의 상태에 빠져 있었고, 사람들에게 만져지고, 붙들리고, 이리저리 잡아당겨졌지만, 마치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말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 마을이나 그 지역을 지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보르고를 지나쳐 군중이 모두 흩어진 후, 무려 한 마일이나 지난 지점에 위치한 나병 환자들을 위한 집에 도착해서야 정신을 차렸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그는 동행자에게 물었다.
“우리는 언제쯤 보르고에 도착하나?”

그의 영혼이 천상적 관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세속적인 일도—장소의 변화든, 시간의 흐름이든, 사람들의 몰려듦이든—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의 동료들이 여러 차례 직접 체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으며,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성 프란치스코는 몬테 카살레의 형제들이 거처하는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형제 하나가 아주 심하게 병들어 있었는데, 그 병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극심하여 자연적인 질병이라기보다 마치 악마에게서 온 고통과 형벌처럼 보였다. 그 병든 형제는 때로는 온몸을 떨며 땅바닥에 자기 몸을 내던졌고, 입에서는 거품을 물었다. 잠시 후에는 온몸의 근육이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펴지고, 뒤틀리고, 굽혀졌다가 다시 꺾였으며, 어느새는 발뒤꿈치가 목덜미에 닿을 정도로 말려 올라가고, 몸 전체를 공중으로 던졌다가 다시 바닥에 곧장 내팽개쳐지곤 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형제들이 그 심각한 병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그는 그 불쌍한 형제를 불쌍히 여겼다. 그러자 자신이 먹고 있던 빵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그 손—성흔이 새겨진 거룩한 손—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십자가의 표징을 빵 위에 그었다. 그리고 그것을 병든 형제에게 보내주었다.

그 형제는 그 빵을 먹자마자 완전히 나아버렸고, 이후로는 그 병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성 프란치스코는 그 장소에 있던 형제 둘을 알베르냐로 보냈고, 함께 동행했던 그 신심 깊은 농부에게는 자기 나귀를 돌려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 농부도 그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형제들과 농부가 아레초 지방에 들어섰을 때, 그곳의 몇몇 사람들이 멀리서 그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이들이 성 프란치스코 일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틀 전, 성 프란치스코가 그 길을 지나갔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들은 그가 다시 오는 줄 알았다. 마침 그 마을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사흘째 진통 중이던 여인이 있었는데, 이제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성 프란치스코께서 그 여인 위에 당신의 거룩한 손을 얹으신다면, 분명히 무사히 출산하게 되실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이 가까이 오자, 사람들이 보니 성 프란치스코는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하지만, 비록 성 프란치스코의 육신은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의 성덕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진 믿음은 살아 있었다. 오 놀라운 일이여! 그 여인은 이미 죽어가는 중이었고, 죽음의 고통 안에 놓여 있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형제들에게 물었다. “혹시 성 프란치스코의 손이 닿은 어떤 물건이라도 지니고 있습니까?”

형제들은 애써 생각해 보았고, 정성스럽게 뒤졌으나, 그분의 손이 닿았던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타고 왔던 나귀의 고삐 하나가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고삐를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임신한 여인의 배 위에 그것을 얹었다. 그리고 열심히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하게 그분께 자신들과 여인을 맡겨드렸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가! 고삐를 배에 얹자마자, 여인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순산하였고, 기쁨과 평안 가운데 아이를 낳았다.

그 후 며칠 뒤, 성 프란치스코는 치타 디 카스텔로로 갔다. 그때 많은 시민들이 그에게 한 여인을 데려왔다. 이 여인은 오랫동안 마귀에 들려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의 해방을 간절히 청하였다. 이는 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과 끔찍한 비명소리, 개처럼 짖는 소리로 온 이웃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먼저 기도한 뒤, 그녀 위에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의 표징을 그었다. 그리고 악령에게 그녀에게서 떠날 것을 명하였는데, 그러자 마귀는 곧바로 그녀에게서 나가버렸다. 여인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온전해졌다.

이 기적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또 다른 여인이 큰 믿음을 가지고 병든 아들을 그에게 데려왔다. 이 아이는 심한 종기로 고통받고 있었고, 어머니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가 자신의 손으로 아이에게 십자가의 표징을 그어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 어머니의 기도를 받아들이고, 아이를 품에 안은 후 그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그 상처 위에 거룩한 십자가의 표징을 세 번 그으며 축복하였다. 그런 다음 자신의 손으로 다시 붕대를 감아주고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날은 이미 저녁이었기에, 어머니는 아이를 침대에 눕혀 재웠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아이를 깨우러 가 붕대를 풀어보았고, 놀랍게도 아이는 그 전날까지 있었던 병의 흔적조차 없이 완전히 나아 있었다. 다만, 그 상처가 있던 자리에 장미꽃처럼 붉은 살결이 새롭게 돋아나 있었다. 이 장미꽃 자국은 단순한 흉터라기보다 기적의 증거로 남았으며, 아이가 자라나는 내내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을 치유해 준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깊은 신심을 품게 되었다.

그 도시에 머무는 동안, 성 프란치스코는 신심 깊은 시민들의 간청으로 한 달을 더 머물렀고, 그 시간 동안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

그 후 그는 프라 레오와 함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로 돌아가고자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한 선한 남자가 나귀 한 마리를 빌려주었고, 성 프란치스코는 그 나귀를 타고 여행하였다. 그러나 길이 험하고 추위가 심하여, 하루 종일 걸어도 묵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하였다.

결국 어둠과 궂은 날씨에 밀려, 그들은 한 움푹 팬 바위 아래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눈과 밤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고, 의복도 얇았기에, 그 나귀 주인은 추위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흐느꼈고,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이토록 추운 곳으로 데려온 성 프란치스코를 원망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모습을 알아챈 성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고, 영혼의 열정으로 그의 쪽으로 손을 뻗어 만졌다.

오 놀라운 일이여! 세라핌의 불꽃에 의해 타오르고 관통된 그 손이 닿자마자, 그에게서 모든 추위가 사라졌다. 그리고 안팎으로 놀라운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마치 그가 불타는 화덕 곁에 있는 듯한 따뜻함을 느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위로받았고, 곧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말하길, 그날 밤 바위와 눈 속에서 잤던 잠이, 지금껏 자신의 침대에서 자본 잠보다도 훨씬 더 달콤했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고 마침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이 가까워지자, 프라 레오가 눈을 들어 그 장소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십자가 하나가 성 프란치스코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십자가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형상이 있었고, 성 프란치스코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십자가는 성 프란치스코가 걸어가면 같이 나아가고, 그가 멈추면 같이 멈추었다. 그 십자가는 너무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 성 프란치스코의 얼굴뿐 아니라 그 주변의 길 전체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광채는 성 프란치스코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프라 레오와 함께 그곳에 도착하자, 형제들은 매우 큰 기쁨과 사랑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이후 성 프란치스코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의 성덕과 기적에 대한 명성은 수도회 안에서뿐 아니라 세상 전체에 점점 더 널리 퍼져 나갔으며, 그는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깊은 겸손 안에 머물렀고, 스스로를 가장 큰 죄인이라 불렀다.

어느 날, 프라 레오는 혼자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궁금해하였다.
“이 사람은 공공연히 자신을 큰 죄인이라 부르지만, 수도회 안에서 위대한 자가 되었고 하느님께도 많은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그가 은밀히 어떤 육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그는 정결함을 지켜온 것일까?”

그는 이 의심을 성 프란치스코에게 묻기에는 두려워 차마 말하지 못했고, 대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며 간절히 간청하였다.
“주여,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와 공로를 통하여 제가 그 진실을 알게 하소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그는 환시를 통해 확증을 얻게 되었는데, 성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육체 안에서도 정결한 동정(童貞)의 삶을 지켜온 이였다는 것이다.

그 환시 속에서 프라 레오는 성 프란치스코가 매우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은 누구도 올라가 함께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계시가 들려왔다.
“이 지극히 높은 자리는, 가장 거룩한 성흔으로 장식될 육신 안에서 지켜진 완전한 동정의 정결을 상징하는 것이니라.”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성흔으로 인해 육체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며, 더 이상 수도회의 운영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회의 총회를 앞당기도록 하였고, 총회가 열리자 형제들 앞에서 겸손히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사과하였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저의 연약함 때문에 저는 더 이상 총장직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총장직 자체를 공식적으로 사임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교황으로부터 직접 임명된 자리였기에, 교황의 명시적인 허락 없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후계자를 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프라 피에트로 카타니를 자신을 대신할 대리 총장으로 임명하였고, 수도회 전체를 그와 지방장관들에게 애정과 열의로 맡겼다.

이렇게 임무를 맡긴 후, 성 프란치스코는 기쁜 마음으로 눈과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주 하느님, 저의 주님이시여, 이 가난한 가정을 당신께 맡겨 드리나이다. 지금까지 당신께서 저에게 맡기셨던 이 형제들을, 제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제 친히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주소서. 또한 저는 이 형제들을 각 지방의 장관들에게 맡겨 드리나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방심이나 악한 모범 혹은 너무 엄격한 교정으로 인해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잃게 된다면, 마지막 심판 날에 당신 앞에서 그 책임을 지게 하소서.”

이 말 가운데 “제 연약함 때문에 더 이상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 바로 그 구절에서, 모든 형제들은 그가 지금 그리스도의 가장 거룩한 성흔을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형제들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그는 수도회에 대한 모든 책임과 관리를 자신이 임명한 대리 총장과 지방 장관들에게 맡겼으며,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지금 이처럼 제 연약함으로 인해 수도회의 직무를 내려놓았으니, 저의 남은 임무는 오직 수도회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며, 형제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아는 바는, 만약 제 병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제가 수도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란, 바로 끊임없이 하느님께 이 수도회를 위해 기도드리는 것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 회를 보호하고 다스리시고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받은 가장 거룩한 성흔을 가능한 한 숨기려 힘썼다. 성흔을 받은 이후로 그는 항상 손에 붕대를 감고 발에는 버선을 신었으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형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성흔을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옆구리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나, 그것마저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그를 시중드는 형제 하나가 ‘신심 깊은 속임수’를 써서 그의 옷을 벗게 하였다. 그것은 먼지를 털어내겠다는 이유였다. 성 프란치스코가 그의 앞에서 옷을 벗자, 그 형제는 옆구리에 난 상처를 분명히 보았다.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세 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만졌고, 그 크기와 깊이를 확인하였다. 당시 그의 대리 총장도 이 상처를 분명히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확실하게 성흔을 확인한 이는 프라 루피노였다. 그는 매우 깊은 관상에 잠기는 이였으며, 성 프란치스코가 종종 “세상에 이보다 더 거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성덕이 깊은 인물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를 친구처럼 사랑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프라 루피노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 거룩한 성흔을 확인하였다. 첫째는 다음과 같다. 성 프란치스코가 입는 바지는 매우 길어 옆구리의 상처를 덮기에 충분했는데, 프라 루피노가 그 바지를 빨 때마다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언제나 바지의 오른쪽 부분에 피가 묻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그 피가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확신하였다. 하지만 성인은 그가 벗은 옷을 펼쳐 상처의 흔적을 확인하려 하자, 꾸짖으며 질책하였다.

두 번째 방식은 이렇다. 어느 날 프라 루피노가 성 프란치스코의 등을 긁어주고 있을 때, 일부러 손을 옆구리 쪽으로 미끄러뜨려 그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성 프란치스코는 고통스러워하며 크게 외쳤다.
“하느님께서 너를 용서하시길, 프라 루피노! 어찌 그런 일을 했느냐?”

세 번째 방식은 이렇다. 프라 루피노는 언젠가 성 프란치스코에게 간절히 청하였다.
“아버지시여, 제발 당신의 옷을 저에게 주시고, 제 옷을 대신 입어주십시오. 자비의 사랑으로 부탁드립니다.”

성인은 마지못해 이를 허락하였고, 옷을 벗고 그에게 건네며 그의 옷을 입었다. 그 옷을 벗고 입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프라 루피노는 그 상처를 분명히 목격하였다.

이처럼 프라 레오를 비롯한 많은 형제들도 생전에 성인의 성흔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 이 형제들은 모두 성덕이 깊고, 말 한마디로도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혹시 모를 의심을 없애기 위해, 그들은 거룩한 복음서에 손을 얹고, 자신들이 성흔을 뚜렷이 보았노라고 맹세까지 하였다.

또한 성 프란치스코와 깊은 친분을 맺었던 몇몇 추기경들도 이 거룩한 성흔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들은 그 거룩한 상처에 대한 경외심에서, 그에 관한 아름답고 경건한 찬가와 시편, 산문 기도문을 지었다.

가장 높은 교황 알렉산데르께서도, 모든 추기경과 함께 대중 앞에서 설교하시며 이렇게 단언하였다.
“나는 성 프란치스코가 살아있을 때, 그 몸에 새겨진 거룩한 성흔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한 로마 최고의 귀부인이자, 성 프란치스코에게 깊은 신심을 가졌던 마돈나 자코바 디 세텐솔리도 그가 죽기 전에 이 성흔을 보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러 번 그 상처에 입을 맞추며 경배하였다. 그녀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로마에서 아씨시로 왔으며, 성인의 임종에 함께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씨시 주교관에서 병으로 누워 있었고, 몇몇 형제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병중임에도 종종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찬가를 불렀다. 그러자 한 형제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시여, 이 도시 사람들은 당신을 거룩한 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당신이 진정 그런 분이라면 지금처럼 중병일 때는 오히려 죽음을 묵상하며 눈물로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이 찬송을 부르고, 우리 형제들도 함께 노래하게 하니,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주교관이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많으며, 무장한 경비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곳을 떠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성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랑하는 형제여,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2년 전 우리가 폴리뇨에 머물 때, 하느님께서 네게도 내 생의 기한을 계시하셨고, 나에게도 이 병으로 말미암아 며칠 내로 생을 마감하리라는 계시를 주셨다. 또한 그때 하느님께서 내 모든 죄를 용서하셨으며, 천국의 복됨도 보장해주셨다. 나는 그 계시를 받기 전까지 죽음과 죄를 두려워하며 울었지만, 그 이후로는 기쁨이 가득하여 더 이상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래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을 주셨고, 천국의 영광을 확신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말대로 이제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나도 좋겠구나. 하지만 내 병이 심해 걷지 못하니, 나를 들고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형제들이 그를 안고 길을 나섰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 따랐다.

길을 가던 중, 한 여관 근처에 이르렀을 때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잠시 땅에 내려놓고, 아씨시를 향해 얼굴을 돌리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도시를 향해 손을 뻗어 이렇게 축복하였다.
“하느님께 복을 받아라, 거룩한 도시여! 네 안에서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이며, 네 안에 수많은 하느님의 종들이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로부터 생명의 나라로 부름 받을 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 축복을 마친 뒤, 형제들은 그를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로 옮겼고, 병자용 숙소에 그를 눕혔다.

그런 다음 성인은 한 형제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형제여, 하느님께서 나에게 계시해 주셨다. 이번 병을 통해 나는 오는 몇 날 안에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잘 알듯, 로마의 마돈나 자코바 디 세텐솔리는 우리 수도회를 깊이 사랑하는 분이다. 만약 그녀가 나의 죽음을 모른 채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녀는 큰 슬픔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곧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어 살아 있을 때 나를 보려면 지금 즉시 오시라고 전해라.”

그 형제가 말하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버지시여. 그녀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이 임종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서 잉크와 종이와 펜을 가져오너라. 내가 불러주는 대로 써라.”

도구가 준비되자, 성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은 글을 구술하였다.
“하느님의 종 마돈나 자코바께, 그리스도의 거지 프란치스코가 인사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교감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자매시여, 복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계시하신 바, 나의 생애의 끝이 가까웠나이다. 그러니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정해진 날까지 오시지 않으면, 살아 있는 나를 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감쌀 베옷과 장례에 필요한 밀초도 함께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또, 로마에서 병들었을 때 당신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음식도 가져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쓰는 도중,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로부터 마돈나 자코바가 이미 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길을 떠났으며, 지금 이곳 근처에 와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쓰고 있던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는 쓰지 말고 펜을 내려두어라. 더 이상 보낼 필요가 없느니라.”

형제들은 그가 편지를 끝까지 마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의아해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장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성 프란치스코는 문지기에게 문을 열라고 시켰다. 문이 열리자, 로마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인 마돈나 자코바가 두 아들—로마 원로원 의원들—과 함께, 많은 말을 이끌고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곧장 병자용 숙소로 들어가 성 프란치스코에게 나아갔다. 그녀가 살아 있는 그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성인도 그녀도 큰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로마에서 기도 중이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 저에게 당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를 부를 것이며, 장례에 필요한 것들과 병 중에 드셨던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녀는 가져온 음식을 그에게 먹였고, 성인은 그것을 먹고 큰 위안을 얻었다. 그런 다음 마돈나 자코바는 성 프란치스코의 상처 입은 발에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며 눈물로 적셨다.

그녀의 행동은 옆에 있던 형제들로 하여금, 마치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린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형제들은 그녀를 쉽게 떼어낼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 겨우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 계신 성인을 만나기 위해 이토록 완벽히 준비하여 제때에 도착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로마에서 어느 날 밤 기도하던 중,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자코바야, 성 프란치스코를 살아 있을 때 보고자 하거든 지체 말고 아씨시로 떠나라. 병 중에 드시던 음식과 장례에 필요한 모든 물품도 함께 가져가라.’ 저는 그 음성을 따라 행하였을 뿐입니다.”

마돈나 자코바는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을 떠나 장례가 마쳐질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으며, 그녀와 그녀의 모든 수행원은 장례를 위해 큰 공경과 정성을 다하였다. 장례에 필요한 모든 비용 역시 그녀가 모두 부담하였다.

그 후, 그녀는 로마로 돌아갔고, 머지않아 거룩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깊은 신심으로, 자신의 유해를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고, 그 유언은 그대로 지켜졌다.